01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높디높은 하늘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이번엔 하늘에 상주하며 우리에게 빛을 전해주는 ‘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들은 보통 4,000K에서 40,000K까지 뜨겁게 타오르며 빛을 냅니다. 하늘에서 벌어지는 ‘불장난’인 셈이죠. 우리는 수많은 별들을 마주하고, 가장 거대한 별인 태양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 지동설이 아닌 천동설이 신의 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구가 중심이고, 하늘이 지구의 주변을 돈다는 거죠.
그리고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이들에게 ‘진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뮤지컬 < 최후진술 > 입니다.
이 작품은 종교재판을 받은 후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 대화 >의 속편을 쓰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입니다. 속편을 쓰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고, 하늘의 심판을 받으러 가던 중 동갑내기 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만나게 됩니다. 이처럼 생애 접점이 없었던 두 사람을 엮어 만들어낸 픽션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갈릴레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던 윌리엄은 아직 저승이 익숙하지 않은 갈릴레오의 가이드가 됩니다. 갈릴레오와 함께 그의 최후 심판이 이루어지는 항구로 이동하게 되죠. 이 여정에서 갈릴레오는 자신의 인생에 수많은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으로 지동설을 주장해 그에게 진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코페르니쿠스’부터 늘 별을 바라보다가 보지 못한 그의 딸 ‘마리아 첼레스테’까지. 갈릴레오는 자신의 신념을 철회하고, 천국에 가고 싶다는 의지 하나로 속편을 쓰며 천동설을 지지하고자 했지만, 자신이 진실해야만 하는 이유를 여정길에서 찾아 나서며 다시금 진실에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갈릴레오에게 별과 빛, 그리고 진실은 어떤 의미일까요?
갈릴레오는 자신의 삶에 함께 상주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신념을 어기면 그 누구에게도 떳떳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별이 자신을 온전히 태워가며 빛을 내는 것처럼,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만 누군가에게 비춰질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갈릴레오는 항구에서 벌어진 인생의 심판에서 이렇게 최후진술을 합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제가 생각했을 때 갈릴레오에게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그의 삶을 함께 산 모든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만든 망원경이 별들의 움직임에 대해 진실을 알려준 것처럼, 자신도 하나의 망원경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전달해주는 사람으로 남게 되었던 거죠.
뮤지컬 < 최후진술 >에서 흥미로운 점은 윌리엄의 존재입니다. 윌리엄의 역할을 맡게 된 배우는 멀티를 겸합니다. 앞서 말했던 ‘코페르니쿠스’를 포함해 천동설을 주장해 신처럼 여겨졌던 ‘프톨레마이우스’, 그리고 신으로 나오는 ‘프레디’까지.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완전한 2인극입니다. 단순히 배우를 소비적으로 사용하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저는 윌리엄이 다른 인물들을 함께 소화하며 나타나는 효과가 톡톡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윌리엄은 갈릴레오의 최후진술 직전, 그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난 진실이 중요해. 네가 망원경으로 보여줬잖아.”
이 대사는 뮤지컬 전체를 아울러 가장 중요한 대사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그 자체로 주제가 되는 대사기도 합니다. 이처럼 윌리엄은 갈릴레오에게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게 뭔지 깨닫게끔 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런 윌리엄이 프톨레마이우스가, 프레디가 되기도 하면서 삶이라는 여정에 있어 진실을 깨우치게끔 한 모든 사람의 대변자가 됩니다. 모든 인물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게, 최후 가이드인 윌리엄이 됩니다.
한 인물이 어떤 사람의 인생의 축소판이 된다는 점에서 윌리엄은 극 속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최후진술 >을 말하며 넘버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주옥같은 노래들이 정말 많은데요.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접했던 넘버는 가장 마지막 넘버인 ‘그래도 지구는 돈다’입니다. 이 넘버는 독단적으로 존재하는 넘버가 아닌, 앞에서 불린 3가지의 곡을 혼합시켜 만든 리프라이즈 넘버입니다. 그가 종교재판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부른 ‘최후진술’과 진실을 볼 수 있었던 통로인 망원경을 자랑하는 넘버인 ‘망원경’, 그리고 자신이 지동설을 주장하는 데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에 관한 노래 ‘브루노’까지. 그가 최후진술에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진실을 전달하기까지 그 중심에 담긴 넘버를 혼합시키며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갈릴레오의 여정을 엿볼 수 있게끔 합니다.
리프라이즈를 통해 그 넘버에 담긴 이야기를 강조하고, 이야기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이 아주 잘 보이는 넘버입니다.
그 외에도 정말 좋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넘버들이 많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어렵지 않게 찾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뮤지컬 < 최후진술 >은 안타깝게도 올해 5월에 두 달에 걸친 삼연 공연 이후 막을 내렸습니다. 자주 대학로에 찾아오는 뮤지컬이니 사연으로 돌아온다면 한 번 쯤은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 다음으로 소개할 작품은 뮤지컬 < 시데레우스 >입니다.
이 뮤지컬 또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주인공으로 합니다. 다만 앞서 소개한 < 최후진술 >보다 시기적으로 조금 더 앞서 있는데요. < 시데레우스 >는 갈릴레오가 처음 지동설에 대해 연구하면서 있었던 일을 다룬 뮤지컬입니다. 갈릴레오는 그에게 자신의 저서 ‘우주의 신비’를 건네며 처음으로 천동설에 대한 의심과 의문을 안겨준 수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를 만나게 됩니다. 캐플러의 이론이 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갈릴레오는 연구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어쩌면 이 이론이 가리키는 지동설이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다는 답을 내립니다. 이 질문에서부터, 자신을 끈질기게 설득했던 케플러와 함께 지동설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며, 극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함께 망원경을 발명하고, 그 망원경을 통해 넓디넓은 우주를 관찰하면서 이단으로 여겨졌던 지동설에 대해 하나 둘 정립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별들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라는 이론서를 발간합니다. 제목의 의미가 여기에서 등장합니다. 케플러와 갈릴레오, 두 사람의 공통점을 제목에 담아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데레우스의 발간 후, 그들은 여러 가지 난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우선 교외의 질타였습니다. 천동설이 신의 뜻이며, 지동설을 지지하는 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론서에 이름 박힌 갈릴레오가(원래는 케플러도 함께 써넣었어야 했지만 한 사건으로 갈릴레오의 이름만 기입됩니다. 이야기가 샐 것 같아 생략합니다!) 이단죄로 잡혀가게 되죠.
또 다른 건 케플러가 외면한 것에 있었습니다. 지동설을 대입했을 때 그가 ‘우주의 신비’에 쓴 내용이 얼추 들어맞긴 했지만, 계산적으로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의 연구에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그가 자신의 실패를 마주하게 되고, 결국 그 좌절이 두려워 계속해서 외면합니다. 자신의 연구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요. 늘 당당하고 자신의 신념에 확신이 있던 케플러에게, 진실은 조금 무서운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재판을 받던 갈릴레오는 그 억압에 못 이겨 그의 이론을 철회하고자 말합니다. 교외가 주변 사람들을 걸고 넘어져 위협을 가했기 때문이었죠. 주변 사람들을 위해 그는 진실을 잠깐 덮어두지만, 결국 그로 인해 진실을 마주하게 된 인물은 분명 있었습니다.
극 안에서는 갈릴레오의 딸인 마리아 첼레스테도 등장합니다. 그는 수녀의 신분으로 신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이 아닌 늘 별을 바라보며 자신을 소홀히 대했던, 지동설을 주장하고 이단으로 파문당한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질책하기도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망원경을 통해 진실을 마주하며 신은 답을 주는 존재가 아닌, 답을 찾도록 인도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마리아는 당시 모두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조금씩 무뎌지는 시대의 혼란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인물입니다.
또한 케플러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갈릴레오가 화형당할 위기에 처한 모습을 직접 봤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신비’를 보완한 새로운 저서를 쓰게 되죠. 어쩌면 갈릴레이와 함께 지동설을 연구한 학자로서 진실을 전달할 의무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에게 진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습니다.
뮤지컬 < 시데레우스 >는 무대가 별미입니다.
우주와 별을 다루고 있는 작품인 만큼, 무대 또한 우주를 담아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위로 뻗어나가고 있는 무대의 모습은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를 연상시킵니다.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어떻게 보면 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무대 위에서 케플러와 갈릴레오는 계속해서 망원경을 들여다보는데, 그들이 망원경을 통해 별을 마주할 때 빛나는 눈동자를 표현한 것 같이 보여 인상적이었습니다.
영상 활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무대 뒤쪽 벽과 아래쪽 경사면에 떠오르는 영상들을 통해 끊임없이 상상하고 생각하는 창구를 열어두었습니다. 이들의 여정이 그들이 발 담그고 있는 우주처럼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조금씩 보여주기도 하죠.
이처럼 100분 동안 이어지는 이야기를 모두 담은 무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전달하고 있는 주제가 ‘진실을 보는 눈’에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무대인 것 같습니다.
< 시데레우스 > 또한 훌륭한 넘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뮤지컬에서 넘버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편인데요, 이처럼 예쁘고 좋은 넘버를 만날 때의 희열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 케플러가 부르는 ‘살아나’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도
말도 안 되는 꿈이라도
펼쳐진 여백 속에 상상들을 그리며
언젠가 숨겨졌던 사실들을 찾을 거야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들을
난 찾을 거야
케플러는 ‘살아나’를 통해 일개 수학자였던 자신이 우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갈릴레오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눈이 좋지 않아 보이지 않았던 모든 것들을 상상하게 되었던 그는, 상상만으로 존재했던 우주에 흥미를 갖게 된 거죠.
여기에서 케플러의 강인한 신념과 단단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사실을 찾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이 넘버를 부르는 케플러는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그의 당당함과 강인함을 바라보며, 어쩌면 순간적으로 케플러에게 동경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 시데레우스 >의 텍스트에는 분명하고 확실한 힘이 있습니다. 유쾌한 대사, 은유적인 표현들. 과학적인 사실도 함께 전달해야한다는 점에서 텍스트는 분명 경쟁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말지만, 적어도 텍스트 안에서는 진실만을 전달합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의 말을 통해 전달되는 텍스트들을 들으며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합니다.
또한 우리의 역사에 분명한 영향을 끼친 갈릴레오의 삶에 대해 전달하면서,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다만 주제가 분명하다는 점, 그 모든 게 인물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는 점에서 조금은 유치하게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음, 약간은 아동극 같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것들을 감안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넘버들과 의미, 그리고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고 나왔을 때 느껴지는 전율은 압도적이었어요. 아주 개인적으로요!
뮤지컬 < 시데레우스 >는 아트원시어터 1관에서 성공적인 재연을 마치고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11월 29일까지 연장공연을 합니다.
이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개인주의 사회가 심화되며 자신을 숨기기에 급급한 세상에 동시대적 의미를 가지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때때로 진실을 부정하고 기피하는데, 이 작품은 그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지, 그 과정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생각해보게끔 합니다. 그들이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을 인정하기에는 신의 뜻을 거스르는 과정이 필요했고, 결국 그 과정을 거쳐 진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요.
모두에겐 숨기고 싶은 사실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얀 거짓말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가끔씩은 그 진실을 마주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말을 두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에 수놓인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공연 관람을 하실 땐 마스크를 꼭꼭 착용하시고, 위생수칙을 준수하시어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건강은 진실만큼이나 중요하니까요!
사진출처/ 장인엔터테인먼트, 랑엔터테인먼트
02
'불닭' 편
리뷰에 앞서 본인은 갤포스를 미리 복용하였으나
쏟아지는 캡사이신을 막지 못해 대리인을 고용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천고마비의 계절, 혀를 마비시키던 지난 기억은 잊었다. 이번에는 꺼진불도 다시보자! 내 구강에 불장난을 시켜줄 편의점 음식은 과연?
이름하여 리턴즈 ‘불’닭 시리즈.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화끈한 맛으로 돌아왔다. 일단 ‘불닭 볶음면’ 그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이 라면이 나타난 전후로 매움에 대한 판도가 변했다. 매운 정도라고 해봤자 틈새라면, 신라면이 전부였던 시기를 지나 그 이상의 경지까지 올라버린 것. 맵부심을 부리기 위해 이제는 틈새라면 정도로는 통하지 않는 시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닌 통각을 자극하는 것이라 하는데 이 빨간맛에 중독된 사람들의 심리가 뭘까?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총 4 군데의 편의점을 돌아 5봉지의 라면을 사왔다.
불닭볶음면의 마스코트 이름이 ‘호치’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호치는 트렌드에 맞게 일명 박보검 하트 앞머리를 하고 모든 라면 메인에 귀엽게 그려져 있다. 일단 먹어보지 않았던 것들을 위주로 사오다 보니 불닭볶음면이 생각보다 많은 시도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면의 종류는 다 건든 느낌이다.
면은 기존 팔도 비빔면과 흡사하다. 그런데 소스가 2가지로 나뉜다는 점에서 특이점이 발생한다. 사실 비빔면 소스보고 약간 겁이 났다. 하지만 최대한 쫄지 않고 한 방울도 빠짐없이 모든 소스를 다 넣었다. 그런데 도전장을 넣기 전의 맛을 보니 너무 실망스러웠다. 검붉은게 캡사이신이 아니라 간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맹맹밍밍한 맛이었다. 비빈 그릇을 보니 붉은 기름이 묻어나는게 분명 불닭 소스가 맞는데..뭔가 다 졸여지지 않은 떡볶이를 먹는 느낌처럼 면과 소스가 따로 놀았다. 첫판에 너무 약한 상대를 만나니 시시해 바로 도전장을 넣었다.
쓰고 있는 지금에도 느낀다. 당장 그 손을 멈추라고. 도전장은 괜히 도전장이 아니다. 거의 캡사이신의 원액을 전부 때려 넣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맵다. 그나마 뜨겁지라도 않아서 다행이지 한 입 먹자마자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목구멍에서 벌어지는 불장난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체감하는 맛이었다. 그러나 맛에 있어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비빔면은 실패했다. 먼저 새콤달콤한 비빔면 특유의 감칠맛을 잡아내지 못한 채 도전장을 만들기에 급급해 맛에 대한 밸런스 전체를 망쳐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도전장을 넣었을 때도 맵다..! 는 있었지만 맛있다..!는 느끼지 못했다. 역시 비빔면은 팔도.
이쯤되면 왜 시즌으로 나왔던 아이템들이 구하기 힘들어지고 서서히 사라지는지 알 것 같아지는 순간이다. 끓인 사람의 손이 문제일까, 이 라면의 문제일까.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일단 외관상으로는 그럴듯하다. 면발의 굵기는 삼양라면 정도였으며 후레이크는 심플하게 중국산 김치쪼가리가 들어가 있다. 그럼에도 김치가 김치면보다는 굵고 통통한 것이 특징! 그런데 맛은... 진로는 왜 삼양과 콜라보를 한거지? 라는 의문이 드는 맛이다. 약간 두부김치나 김치볶음면같은 느낌으로 만든 것일까? 시도는 좋았다. 그러나 기존의 불닭이 흥행했던 지점은 그 단짠의 감칠맛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이 김치 불닭은 시고, 짜고, 밍밍하다. 이게 무슨 말이냐. 조화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쩜 이렇게 올해 연달아 내놓은 것들의 맛이 다 따로 놀 수 있는지 이쯤 되면 신기할 따름이다.
아버지가 조리하신 결과물. 비록 크림까르보 탕이 되었지만, 이전에 한번 먹어 봤으니 괜찮다. 내 미각이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면은 칼국수면이다. 사실상 구성은 기존 까르보 불닭과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맛도 까르보 불닭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차이점을 찾자면 개인적으론 기존의 까르보가 더 부드러운 맛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뭐랄까. 이 크림 까르보는 약간 마미손 같은 느낌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누군지 다 아는 맛인지 이름만 바꾼 느낌. 그럼에도 한가지 맛의 특징이 있다면 천하장사 소세지 맛이 난다. 조금 더 오묘하게 느끼해졌다. 이전의 것들보다는 조화가 있으나 이 라면은 그 핀트가 나간 조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이니 주의하자.)
여기서부터... 고비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어제의 나..맵부심이 하늘을 찔렀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결국 저 대왕 주전자에 든 물은 다 써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옥수수차가 되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달린다. 웹진 독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이때부터는 아바타를 구해 대리시식을 부탁드렸습니다.
"A님"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나온건데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어쩌면 유의미한 결과가 아닐까? 기존의 불닭보다는 덜 맵고 스파게티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난다. 콩고기도 꽤 많이 넣어줘서 씹는 맛이 참 좋다. 치즈를 왕창 넣어서 넣으면 극락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맛. 순후추 맛이 꽤 강한 편인데 후추 싫어하는 사람들은 불호일 수도 있겠다. 주변에 먹어본 친구들도 반응이 다 갈린다. 하지만 나는 별 5개!!
"B님"
디게 맵지만 디게 맛있다. 홍라면 치즈맛과 비슷하다. 안 매울 줄 알고 먹는다면 큰 오산이다. 덜 매울 것이라 광고한 것은 삼양의 농간이나 이 정도 맛이면 참고 넘어가 줄 수 있다.
매운맛으로 다른 고통을 잊겠다는 건 내일의 나에게 못할 짓인 것 같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쯤은 가뿐히 무시하지만, 내일의 나는 화장실에 딱 붙어있게 될 것이니. 그러나 어쩌면 인간은 후회의 동물이 아닐까? 분명 불이 붙어 스스로 타버릴 것을 알면서도 불을 붙이고 마는. 그런 어리석음을 깨달으며 다음에 다시 돌아오겠다.
03
두 번째 Playlist < 불장난 >
꿈꾸는 사람에게 퍽퍽한 현실은 가장 위험한 적이다. 인생이란 퀘스트의 보스 몹인 셈. 이 곡의 가사는 그 현실에 잡아먹히는 순간 끝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대신 여느 곡들처럼 욕설 섞어 으름장 놓지 않고, 서글픈 신세를 스스로 연민하게 하지도 않는다. 가사 특유의 결연함은 당장이라도 눈앞의 벽을 툭툭 부수고 날아오를 수 있을 것처럼 만들어준다. 영화 < 트루먼쇼 >의 트루먼처럼 말이다. 그러니 눈앞의 현실에 지지 말자. 그 뒤엔 상상도 못 할 새로운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요즘, 외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노래를 찾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됐다. 타지에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그린 이 곡은, 순식간에 청자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분위기 자체가 아슬아슬한 데다 어딘가 도발적이기까지 해서, 불장난 같은 사랑의 표본처럼 보인다. 노래가 좋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니 웬만하면 꼭 뮤직비디오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감각적인 모스크바의 전경과… 멋진 멤버들이(!) 가슴에 훈훈한 불을 지필 것이다.
언젠가 우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퉁퉁 부어 코를 팽 풀고 있는 내 앞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 취향이 의심됐지만, 남 앞에서 시원하게 울 수 있다는 건 솔직함의 증거라는 말에 맘이 녹았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이라 창피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급격히 편안한 사이가 됐다. 아마 말 뒤에 숨은 상대의 배려 덕이었겠지만 가끔 그런 것들이 사람을 얼마나 데우고 녹이는지 깨달을 때마다 신기하다. 경험담을 바탕으로 썼다는 이 가사 속 빈지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오늘도 모르는 새 누군가에게 사소한 위로가 되어줬을 여러분에게 이 곡을 바친다.
엄마의 말버릇 중 하나는 ‘좋을 때다.’이다. 요즘 부쩍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스물 중반이 넘어가니 나 또한 도시락 까먹듯 과거를 야금거린다. 숱하게 저질렀던 불장난 때문에 혼만 나던 그때가 반찬이 되는 기이한 현상. 현재가 딱히 불행한 것도 아닌데 시간이 데려간 기억들은 이상하리만치 특별하다. 마감에 시달린 오늘도 언젠간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때가 오겠지. 이 곡은 유독 가혹한 하루를 보낸 이들과 함께 듣고 싶다. 다행히 세상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농담도 곁들이면서.
<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이라는 영화가 있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유럽으로 떠나는 다큐멘터리다. 땡전 한 푼 없이 유럽을 돌겠다는 당찬 이들은 105분 동안 관객의 우려를 신나게 박살 낸다. 반쯤 미치면 사는 게 즐겁다는 싸이월드 시절의 글귀처럼, 어쩜 인생은 맞불을 놓는 자만이 해내는 걸지도 모른다. 이 곡은 그들 여정의 테마였는데 이제는 겁나서 주저하게 될 때마다 내가 듣는 노래가 됐다. 식은 열정에 기름 콸콸 붓고 싶은 당신에게 영화와 더불어 추천하고 싶은 곡. (왓챠에 있어요!)
가만히 있어도 연락처를 연동해 친구를 물어다 주는 sns 전성시대, 인간관계를 내려놓기란 어려운 일이다. ‘인싸’니 ‘아싸’니 구분까지 생겨 머리는 두 배로 아프다. 그렇기에 더 이상 내 기분은 뜨겁지 않아, 그러니까 내게 호읠 베풀지 마! 하는 노래의 가사는 더욱 빛난다. 절절 끓는 관계에 데일 바에는 자발적 아싸가 되겠다니. 그야말로 ‘힙’의 정석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1인분의 삶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곡을 추천한다. 물론, 이 노래의 작사가인 오혁이 과대 출신이라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만.
우리는 가끔 커피도 타고 가을도 타겠지만
무엇보다 걱정과 불안이 말끔히 타서 재가 되는 계절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그럼 우리는 겨울에 만나요!
04
곰돈까스
여러분은 ‘불장난’ 하시면 어떤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나요?
말 그대로 어렸을 적 불장난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 수 있고, 사랑의 불장난일 수도 있고, 블랙핑크의 불장난이 떠오르셨을 수 있으실 텐데.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정말 만나서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군요! 요번 저희 가을 호의 키워드가 불장난인 것만큼 저희 『맛있는 음식에 추억을 곁들여』에서는 정말 아무 상관 없는 돈가스 맛집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사실, 요리할 때 불장난하면 안 되어서 불장난과 관련한 음식이 없는 대신 저와 가을에 대한 추억을 가진 돈가스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돈가스 좋아해요?
어떤 유명인이 한 말이죠. 돈가스윙님의 말씀이 있었죠. 저는 예외적으로 그 전부터 돈가스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그 이유는 후 추억에 곁들이는 시간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오늘 저희가 소개해드릴 돈가스집은 바로~ 월피동에 위치한 ‘곰 돈가스’입니다. 일명 ‘곰돈’이라는 줄임말로 불리는 곰 돈가스는 제 주변에만 봐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 이유를 파헤쳐보겠습니다.
< 곰돈까스&우동 >
평일, 토요일 오전 11:00~ 오후 21:00
일요일 휴뮤
배달의 가격과 매장의 가격은 차이가 있으며 1000원 ~ 2000원 정도의 차이다.
매콤우동&모둠돈가스
곰돈가스
우선 첫 번째는 ‘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매번 갈 때마다 푸짐하게 주세요. 저도 어디 가서 못 먹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여기에 가면 진짜 배가 부를 때까지 먹고 마지막 한 조각이 항상 남아요. 그래서 아마 푸짐하게 먹을 수 있기에 이곳을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두 번째로는 ‘맛’이죠.
진짜 저의 최애 돈가스집은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천안에 있는 라디오 살롱에서 파는 돈가스고 한 곳이 바로 곰돈 입니다. 약간 이 두 곳의 맛도 차이가 나는데 천안에 있는 라디오 살롱은 소스의 맛이 이국적인 맛을 내면서 돈가스의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고, 곰돈은 정말 돈가스 본연의 맛을 살려내는 것 중 담백하면서도 느끼하지가 않았어요. 정말 딱 적당한 정도, 중용의 미라고 해야 할까요? 정말 적절한 맛을 품고 있어서 맛있다고 느꼈어요.
세 번째로 ‘친절함’을 빼놓을 수 없죠.
사실 친절함은 눈으로 보이기보다 사소한 것에 챙겨주시는 게 느껴질 때 친절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장님과 사모님은 정말 친절하게 사소한 것 하나, 하나 기억해주시면서 챙겨주세요. 물론, 둘 중 한 분이 계시지 않을 때거나 바쁘시면 못 챙겨주시는 경우도 발생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오시면 환하게 맞이해 주시고 메뉴에 대한 설명도 디테일하게 알려주셨어요.
그 외로도 메뉴가 많아서 다양한 조합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데, 제가 다양하게 먹어본 게 많이 없어서 꼭 곰돈을 정복하는 그날까지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번 외로 제육볶음도 드셔보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육볶음도 진짜 맛있게 먹었거든요. 정말 베스트 오브 베스트입니다. 강력추천! 제가 자부하고 인증하는 맛입니다!
음식점의 내부와 외부는 조금 올드하다고 느끼실 수 있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약간 그런 느낌 있잖아요. 오래되면 오래돼 보일수록 맛집일 확률이 높다. 물론,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저는 밥집 같은 곳은 오히려 오래된 곳을 많이 찾아가려고 해요. 그만큼 그 자리에서 오래 버텼다면 맛집을 인증하는 것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예외도 분명 있어요. 저에게 동묘가 배신을 가져다주기도 했던 것처럼. 여러분 동묘는 다 오래돼 보이기에 맛집을 찾아서 가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부에 오른쪽 벽면은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있어요. 그리고 만화책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만화책을 보면서 먹을 수도 있고요.
여러분 제가 아무리 입 아프게 설명해 봐도 여러분이 직접 간다는 체험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한 번 정도는 시간 내서 가보셨으면 하는 마음이 정말 크답니다. 만약 요번에 찾아가셔서 맛이 없다면 제가, 콜라를 사드리겠습니다. 정말.. 맛이 없다고 느끼고 인증을 남겨주시면.. 콜라.. 드리겠습니다.. 저는 맛있는데 ㅠㅠ 여러분들의 입맛에도 맞기를 바랄게요.
이제 여기 돈가스, 위에 저의 추억이라는 소스 곁들여보겠습니다. 여기서 조금은 황당한 사실일 줄 있겠지만, 여러분 저는 돈가스를 많이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면 왜 돈가스를 리뷰하게 되었는가?
이것은 저의 중학교 가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희 동네에는 ‘돈가스 클럽’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약간 뭐라고 해야 할까요?? 졸업을 해야 갈 수 있을 정도의 약간 기품 있는 음식점, 레스토랑과도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당시, 저 한 테는요. 근데 제가 친구 아버님이 밥을 사주신다고 해주셔서 따라가서 먹은 적이 있어요. 정말, 아버님 아직도 최고 중 최고이십니다. 정말 멋쟁이시면서 자식들 친구들에게 한없이 정을 베푸시는 분이라 여전히 만나면 친근하게 대해주시는데 아버님이 친구랑 저를 ‘돈가스 클럽’으로 데리고 가신 거죠. 근데 그날은 제가 아버님을 많이 어려워하기도 했고,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비싸서 약간 부담감이 100배는 느껴지는 상태였는데 각자 돈가스를 2개씩 시켜주시는 거예요. 물론, 당연히 먹을 수는 있었죠. 하지만 뭐랄까, 제가 신경이 쓰이면 많이 못 먹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아버님이 진짜 비싼 거 다 시켜주셔서 부담이 되기도 했어요.
우선, 먹었어요. 맛있으니까. 정말 많이 먹었어요. 제 얼굴만 한 돈가스에 소스가 여러 가지 종류에 콜라에 수프에 샐러드에 콘에 뭐 진짜 나올 수 있는 건 다 나온 거 같은데 진짜 다 먹었어요. 저희 아버지가 사주시는 거 남기는 거 아니다. 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어서 어린 마음에 끝까지 다 먹었어요. 그리고 주변에 있는 아울렛에서 친구가 옷을 산다고 해서 따라 들어가서 아버님이 같이 사주신 다는 걸 겨우 말리고서야 집에 돌아왔었죠. 복병의 시작은 그때부터였어요. 긴장이 갑자기 풀리면서 속이 계속 안 좋은 거예요. 그래도 계속 참아보자 하다 새벽에 뭔가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단대병원 응급실로 직행했습니다.
그날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돼서야 링거 맞고 퇴원했어요. 병명은 ‘급체’ 정말 온종일 힘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퇴원하고 바로 학교에 갔는데 학교에 가서도 기절한 상태로 있다가, 결국에는 조퇴를 하고 집으로 왔었죠. 집에 와서는 그나마 괜찮아졌었는데 그날 이후 저와 돈가스와의 인연은 끝이 났죠. 하지만 그때의 끊어졌던 돈가스와의 인연을 이어준 게 바로 이곳 ‘곰돈’ 입니다. 그 정도로 맛있었어요.
저는 이렇게 저를 아프게 한 음식에 대한 추억이 있었어요. 지금 보면 참.. 너무 서글프네요. 아 그리고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곰돈 어떨까요? 시켜 먹는 것도 좋지만 이 가을날에 분위기를 느끼며 곰돈을 직접 방문하시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지금까지 신동현의 맛있는 음식에 추억을 곁들여서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05
가을의 북토크
/김혜진
책에 관한 이야기에 앞서, 간략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책 뒤표지에 강영숙 소설가의 추천사 중 일부가 적혀있는데요. 이 추천사를 읽어드림으로써 소개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다.
“『딸에 대하여』는 요양 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와 그녀의 딸, 그리고 딸의 동성 연인에 관한 이야기다. (중략) 한밤중에 다들 두려움에 떨며 숲을 가로지를까 말까 논의하는 사이 혼자 도주해 숲을 건넌 한 어린아이의 이미지처럼, 『딸에 대하여』는 대단히 앞서가는 소설이고 대담한 작품이다.”
사실 이 소설은 지난 1학기 ‘스토리텔링과 젠더’라는 수업을 통해 접하게 된 소설인데요. 이렇게 묵직하고 오래도록 남을 작품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하루라도 빨리 읽어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미 꽤나 유명한 소설이라는 점도 한몫했고요. 제 글을 읽고 계신 분들 가운데 이미 이 소설을 읽어보신 분도 적지 않을 것 같네요.
사실상 성소수자인 딸, ‘레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철저히 그의 엄마인 화자의 시선만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점이 이 소설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혐오 바깥에서 혐오의 시선을 마주할 때와 혐오 안에서 그 바깥을 내다볼 때의 차이. 그 미묘한 시선 차이를 보여줍니다. 화자의 걸음이 명백히 ‘혐오’의 행위임을 인지하면서도 그 발을 향해 선뜻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는 어려울 때. 그 답답하고 꽉 막힌 듯한 심경을 굉장히 적나라하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하여, 작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실제로 잠깐, 혹은 조금 더 오래도록 우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의 여유가 조금 넉넉할 때 읽어보시길 권장합니다. (말미에는 작은 틈에서 볕이 새어들기 시작하니, 너무 겁먹진 마세요!) 장편소설다운 묵직함을 선사해줄 대담하고 울림 있는 소설, 추천합니다.
소설 뒤쪽에 등장하는 작가의 말과 특히 ‘김신현경’ 선생님의 작품해설이 정말 좋으니 반드시 읽어보세요!
/고토 미즈키 글, 황진희 옮김.
다음으로 그림책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갑자기 웬 그림책인가 싶으시겠지만, 가끔 짧은 그림책에서 긴 장편소설보다도 큰 울림을 받을 때가 있지 않나요? 제가 소개할 그림책 『눈물빵』은 눈물이 많은 생쥐의 짧은 이야기예요. 아주 짧은 이야기다 보니 스포랄 것이 없어 간단하게 줄거리를 말씀드릴게요.
자꾸만 눈물이 나는 생쥐는 몰래 숨어서 울어요. 생쥐가 좋아하는 식빵 끄트머리에 눈물을 닦아 지붕 위로 힘껏 던져요. 날아가던 새는 눈물에 젖어 짭짤해진 식빵 끄트머리를 낚아채 갑니다. 그 모습을 본 생쥐는 계속해서 식빵 끄트머리를 적시고 던지길 반복해요. 식빵 끄트머리가 다 없어질 만큼 울고 나자 생쥐의 눈물은 어느새 그치고, 생쥐는 상쾌한 발걸음으로 돌아갑니다.
책의 앞부분에 적힌 출판사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울고 싶을 땐 힘껏 울고, 또 나아갈 용기를 얻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물론 저는 아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요. 누구든 힘껏 울고 또 나아갈 용기를 얻기만 하면 됐겠지요. 저를 포함한, 눈물 많은 이라면 누구든지 말이에요. 힘껏 울고 조금이나마 나아갈 용기를 얻으시길 진심으로 바라요.
사실, 이 그림책은 제가 오랜 수험생활을 겪을 때, 저를 많이 도와주셨던 분께 선물 받은 책이에요. 이 학교 하나만 바라보고 숱한 눈물을 흘리던 그즈음, 늘 눈이 빨개져 울던 제 얼굴이 떠오른다며 깜짝 선물로 배송된 그림책. 그 안에 함께 넣어주신 카드의 내용이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울아, 눈물이 나면 울어도 괜찮고, 바보 같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짭짤한 식빵 끄트머리를 만들자.”
깜짝 선물의 주인공이 이 글을 읽을 일은 없겠지만, 괜히 이 자리를 빌려 제 안부를 전해드리고 싶어요. 언니, 저는 아직도 많이 울지만, 이제는 금방 털고 일어나기도 한답니다. 덕분에 제가 꿈에 그리던 학교에 와서 이제는 이런 글도 쓰고 있네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편안하고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정세랑
요즘 가장 핫한 소설가 중 한 분인,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 보건교사 안은영 >의 원작소설 작가님으로도 유명하신데요. < 보건교사 안은영 >도 너무 재밌게 봤지만, 저는 이 『시선으로부터』를 읽은 뒤 정세랑 작가님의 세계에 퐁당 빠져버렸습니다. 새삼스럽게 소설의 매력이 이런 거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세세한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정세랑 작가가 표현한 이 소설에 대한 말을 빌려봅니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줄거리를 아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심시선 할머니의 가계도에 속한 가족들이 심시선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훌쩍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이야기일지, 전혀 감이 오지 않지요? 그렇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런데 혹시, 눈치채셨나요? 제목 말이에요. 저는 책 표지를 넘기기 직전까지도 ‘시선(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으로부터’인 줄 알았어요. ‘심시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상 최대의 멋쟁이 할머니가 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이 이름은 실제로 정세랑 작가의 돌아가신 할머니 이름을 한 글자만 바꾼 것이라고 하는데, 이 이름의 매력은 소설을 읽기 전까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나도… 심시선으로 개명하고 싶다…’
그냥 왠지, 저도 심시선이라는 이름을 가지면 우리 심시선 할머니와 같은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긴 했습니다. 심시선 할머니처럼 멋지고도 세상에 하나뿐일 매력을 가진 이다우리 할머니로 나이 들면 될 테니까요.
저의 열 마디보다도 뒤표지에 실린 추천사가 더욱 강력한 힘을 전할 것 같아 덧붙입니다.
"정세랑, 하와이, 그리고 제사’라니, 세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재미는 보장된 셈인데 이 책은 그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 심시선으로부터 뻗어나온 이 강렬한 힘은 나를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 김하나 작가
“내 생에 이토록 한국의 현대사를 정통으로 관통하는, 그러면서도 경쾌함과 꼿꼿함을 잃지 않는 인물을 본 적이 있었던가.” - 박상영 소설가
“책을 읽으며 무척 행복했다. 이 세계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고 (…) 시선처럼 쓰고, 읽고, 자신의 삶을 산 할머니가 우리 모두에게 있었더라면 한국 사회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은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않은 여성이 가장이 될 때, 가족들이 어떠한 결을 갖고 살아갈지에 대한 기분 좋은 전망을 준다.” - 김보라 영화감독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함께 앉아 팬케이크를 먹고 싶은 충동이 들 겁니다. 저 또한 이들의 세계가 끝나지 않기를 늘 바라고 있습니다. 색을 잃지 않고, 꺾이지 않고, 어딘가에는 여전히 존재해주기를. 누구든 제가 쓴 추천 글을 읽고 『시선으로부터』를 읽게 되신다면 꼭 이야기해주세요. 책에서 얻은 행복감을 함께 나누고 싶네요.
좀 더 숨겨져 있는, 아무도 모르는 보물 같은 책들을 꺼내서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아직 독서의 질이 그리 깊지는 못해 다들 좋다는 소설들만 읽어보기에도 급급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제가 정말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책들로 골라 소개해봤어요. 한 권이라도 얻어가는 분이 계셨으면 좋겠네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지금, 며칠간은 해가 아주 따뜻하면서도 바람은 찬, 오묘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며칠 새에 금방 추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기분 좋은 센치함이 가시기 전에,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폭신한 곳에 앉아 고요한 시간을 보내보시면 좋겠습니다. 책으로 얻는 것들이 그 안에 오래도록 남기를 바랍니다.
그럼 다들 건강하세요!
06
틈새김치볶음밥
누구나 한 번쯤은 불장난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릴 때 불장난을 하고 자면 간밤에 지도를 그린다는 어른들의 꾸짖음을 기억하는가? 그 이야기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된 우리는 종종 불장난을 해 불에 데여 아파하고, 마음이 홀랑 타 버리기도 한다. 어쨌거나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장난을 끊을 수 없는 것은, 타오르는 불씨가 아름답고 가까이 닿았을 때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에 중독됐기 때문일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다른 강렬한 것으로 잠시 그 불꽃을 잊어 보는 건 어떨까? 이열치열이라는 말처럼, 불에는 불로 대응해 보자. 가슴에 지펴진 불을 위장으로 옮겨 보자.
이번에 소개할 음식은 ‘틈새김치볶음밥’. 위장에 한바탕 불을 질러 보자.
스프
틈새라면
김치
청양고추
2개
대파
원하는 만큼
달걀
1개
다시다
고춧가루
선택
잘게 썬 김치에 틈새라면 스프, 다시다 반 밥숟갈, 다진 청양고추를 넣고 잘 비벼 준다. 여기에 취향대로 양파, 스팸 등등을 넣어 줘도 된다. 불장난 잘못 해서 마음이 심히 상처받은 사람이라면 고춧가루를 추가해 봐라. 너무 매워서 내 마음에 불내고 간 그 사람 생각은 전혀 안 들 것이다.
식용유를 두른 팬에 먹기 좋게 썬 대파를 넣고 중불에 볶는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불을 켜기 전에 대파를 넣어 주는 것이다. 팬이 달궈지기 전부터 대파를 넣어야 파기름의 향이 더욱 풍부해진다.
파향이 올라오면 불 세기를 높여 섞어둔 김치를 넣고 냅다 볶아 준다. 볶다 보면 매운 냄새 때문에 기침이 나고 눈물이 흐른다. 이 틈을 타 마음껏 울어두자. 흑흑.
대충 다 울었으면 불을 중불로 줄이고 밥 두 공기를 넣어 볶는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은 흰 쌀밥으로 하면 좋겠다. 흑미밥은 맛있지만 완성됐을 때 별로 안 예쁘다.
요로코롬 서로 잘 섞이도록 볶아준다. 보시다시피 흑미밥은 별로 안 예쁘다.
달걀을 톡 까서 서니사이드업으로 구워 준다. 기름을 두르고 약불에 천천히 익히면 된다. 투명하던 흰자가 이름값하며 흰 색이 되면 조심스럽게 뒤집개로 들어서 위장에 이글이글 불을 지필 매운 밥 위에 덮어준다.
노른자를 깨트려서 밥이랑 같이 먹으면 그 궁합이 정말 환상적이다.
하나도 안 맵다. 니는 진짜 사랑을 모른다. 볶음밥은 맛있다.
땀이 다 난다. 스트레스 받을 때 만들어 먹으면 딱이겠다.
땀 닦는 척하고 눈물 닦아도 아무도 모를 듯.
이런 건 왜 만드는 건가? 이것도 음식이라고 할 수 있나? 매운 게 아니라 그냥 아프다. 못 먹겠다.
매운 거 잘 먹는 사람은 불닭소스를 곁들여 먹자.
그 사람을 확실히 잊기 위해 위장을 더 조지고 싶다면 아메리카노로 매운 맛을 중화시키자.
싱겁게 먹는 사람은 달걀 한 알을 더 올려 먹자.
오늘 저녁은 사랑만큼 매콤한 틈새김치볶음밥을 먹어 보는 게 어떨까. 만족스러운 한 끼가 되었길 바란다.
07
드라마 골라보기
나만 빼고 다 있다. 전부 다 인생 영화, 인생 드라마, 인생 연극, 인생 노래, 인생 음식도 있고 하여튼 다 있다. 나만 없다. 뭐든 다 좋으면서도 아쉽다. 작품도 그렇다. 작품 전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작품의 특정 부분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그건 대사 하나기도 했다가, 상황이기도 했다가 배우의 대사 톤이 되기도 한다. 특정 부분은 그 작품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고작 이십대 초반에 인생 작품을 땅땅땅! 정해 두기가 아쉽다. 그런데 어느 날엔 남들 다 하나씩 있는 인생 작품 하나 없는 게 아쉽다. 뒤죽박죽이다. 뒤죽박죽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계속 무언가를 보기는 한다는 것. 그렇게 최근에 봤던 것들을 엮어봤습니다.
드라마 [청춘시대]는 5명의 대학생들이 하우스메이트로 만나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청춘 드라마예요. 지인에게 추천을 받기 전부터 영상 클립으로 많이 접했던 드라마라 별생각 없이 시작했어요. ‘헉! 이건 꼭 봐야겠다!’라거나 ‘헉! 너무 재밌다!’ 등의 생각도, 기대도 없던 드라마였어요. 가끔은 이야기 흐름이 툭 끊긴다거나 약간 뜬금없이 다가왔던 지점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소소하고 통통 튀었어요. 일상에 잘 스며든다는 생각을 할 때쯤 시즌 1을 다 봤고, 어느새 시즌 2를 보고 있더라고요. 일상에 잘 스며들었기에 같은 장면이라도 클립으로 보던 것보다 전체를 봤을 때 더 재밌었던 게 아닐까요? 보다보면 나도 하우스메이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로망도 생긴답니다.
하지만 현실과 드라마는 다르다. 잊지 말자. 지인의 말에 따르면 하우스메이트 잘못 만나면 개고생한단다.
드라마 [미란다]는 미란다라는 30대 노처녀의 일상을 담고 있는 시트콤 드라마예요. 배우로 출연하는 미란다는 실제 코미디언인데요, 자신의 일상을 그대로 담았다고 해요. 가끔은 뻔하고 식상한, 많이 봐왔을 법한 개그들도 나오지만 미란다만의 재치에 정신줄을 놓고 있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답니다. 지인과 함께 봤는데, 미란다가 뭐만 하면 깔깔 뒤집어지는 지인 덕분에 더 재밌게 봤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제가 혼자서도 봤거든요? 혼자서도 뒤집어졌어요. 그렇다 할 직장도 없고, 길도 제대로 못 걸어 다녀요. 툭하면 넘어지고 원래 그렇게 걸으려 했다고 뻔뻔하게 말을 하는데, 그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카메라를 응시하며 시청자들에게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말을 건네는 미란다, 쉽게 끊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은 ‘젤리’를 본다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은영이 고등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해결해나가는 판타지 드라마예요. 원작 소설을 읽지 않으면 뜬금없이 다가오는 지점이 많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럭저럭 잘 봤어요. 평소 관대한 제 성격 탓일지도 모르겠어요. CG로 표현되는 귀여운 젤리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장난감 칼과 총으로 젤리들을 무찌르는 은영의 모습도 매력적이랍니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똑같은 모습을 보일 것 같아요.
[보건 보건교사다 나를 아느냐 나는 안은영]
방금 흥얼거리셨죠?
드라마 [스타트업]은 스타트업에 뛰어든 청춘들의 성장을 그린 성장 로맨스 드라마예요. 박혜련 작가님의 작품들이 참 유명한데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물론 어떤 내용인지, 어떤 화제성이 있었는지 등은 알죠. 그러게요. 왜 안 봤었을까요? 막상 보기 시작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특히 대사들이요. 짧게 툭툭 치다가도 훅 들어와서 ‘헉!’하게 되는 것들이 있어서 놀랐어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인재의 말은 아직도 가끔 생각나요. 그런데 저만 지독하게 지평이를 밀고 있는 걸까요?
드라마 [상견니]는 어쩌다 1988년도의 과거로 돌아가게 된 황위쉬안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범죄 로맨스 드라마예요. 일반적인 타임슬립물과는 차원이 다른 반전의 꼬임들을 즐기고 싶으시신가요? 보다 보면 ‘헉! 뭐지!? 뭐야!?’하게 되는 매력이 있는 반전의 반전이 있는 드라마랍니다. 탄탄한 복선과 캐릭터 관계성,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 저도 아직 보는 중이에요. 추천해준 지인들이 하나같이 다 재밌어서 광광 울더라고요. 넷플릭스에서도 10월부터 [상견니]를 공개했다고 해요. 누군가가 제발 좀 봐달라고 애원한 드라마, 같이 보실래요?
저는 인생 작품이 없는 만큼 모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잘 본답니다. 그리고 비슷한 마음의 크기로 애정해요. 책장에도 인문학, 청소년 문학, 순수문학, SF, 판타지 등 다양하게 꽂혀있어요. 작품들을 정리하고 보니 범죄 스릴러 장르 드라마는 없어서 조금 아쉽네요. 10월에 본 작품들 중에서 소개드린 작품은 제 의식의 흐름대로 뽑아보았어요. (대체로 10월 말에 본 것들) 소개 순서 또한 재미있었던 순서도, 봤던 순서도 아니에요. 그냥 제 의식의 흐름일 뿐… 여러분은 요즘 어떤 작품들을 보고 계신가요? 그중에 인생 작품이 있으실까요? 어쩌면 저처럼 좋아하는 작품 하나 없는 분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08
화끈한 101가지 소망들
딱히 일탈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는 늘 계획대로 사는 것에 만족했으며 만족스럽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갑갑함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번 즉흥적으로 일탈하는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없다. 일탈은 내 동경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안은 문제들은 즉흥 여행, 염색 등의 짧은 일탈로 해결되지 못할 거란 걸 안다. 때문에, 이 글을 쓰겠다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 스스로가 굉장히 모순적이다.
나는 매일 허무맹랑한 생각을 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걸 떠올려 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들투성이다. 영화 ‘업’에 나오는 것처럼 집에 풍선을 달아 구름 위로 가기. 이 상상은 과학 시간에 구름은 그저 물방울과 얼음 알갱이가 뭉쳐있는 것임을 배우곤 고이 접었다. 그렇다면 시간을 돌려 카카오 주식을 사는 건? 시간 여행 기계는 스티븐 호킹도 만들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진작 포기했다. 뭔가 내가 원하는 일탈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난 과연 어떻게 일탈해야 하나?
일탈하는 친구를 혼쭐내도 어색하지 않은데 일탈의 방향을 고민하다니... 어딘가에서 부모님 억장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구체적인 일탈을 정하는 건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대신 남은 반 학기 동안 일탈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분야를 찾는 것이 내 일탈 버킷리스트다. 꼭 성공 후기를 남길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09
우리들의 캠프파이어
여자는 결혼 전에 여행을 가면 큰일을 당하고 해외를 나가는 일은 결혼도장을 찍고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나의 아버지의 것이었다. 그 아래에서 평생을 자랐으니 상상의 범위가 점점 줄어가는 것도 당연했다. 그 루트대로 내겐 통금시간이라는 게 있었다. 저녁7시. 덕분에 성인임에도 생일파티는 꼭 미스터피자에서만 했어도 몸이 편안한 생활을 해왔기에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의지도 점점 꺾여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가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갈지 조차도 내 것이 아닌 아버지의 걱정이며 그의 계획대로 내가 움직여야 한다는 게 확실히 자각된 24살의 시작에 이러다간 숨이 깔딱깔딱 넘어 가겠구나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동안 눌러왔던 울분들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을 때. 나는 머리를 붉게 물들였다. 그것이 나의 불장난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태우고 도망치고 싶은 욕망을 겉으로 분출한 것. 럭셔리한 와인색, 싱그러운 체리 색 그런 것이 아닌 머리를 감으면 새빨간 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그냥 빨간색이었다. 내 미래를 주제로 아버지와의 설전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방으로 쾅 들어가 몇 시간 뒤에 나온 딸이 시뻘건 머리를 하고 나왔으니 아버진 당연히 기막혀했다. 얼마나 기가 막히셨는지 아무말씀도 하지 않으시더라.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만족감이 들었다. 수많은 규칙들을 쏟아내던 입을 한순간에 틀어 막히게 할 정도의 파격이라니. 어떠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스스로도 너무 충동적인 행동이었기에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옷들과 시뻘건 머리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아 피해가 막중했음에도 해방의 자유가 느껴졌다. 아 이래서 서태지가 빨간 머리를 고집했구나. 하는 깨달음까지 함께였다.
그 후로 나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리에 불을 지른 채 살았다. 24살의 시간 내내 아버지와의 불통이 이어졌다는 소리다. 서로의 목소리가 집을 채우고 내 눈에서 울분이 차오를 때면 방으로 들어가 머리를 빨갛게 물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노동인가 싶지만 그때는 다시 새빨개진 머리를 보면 마음이 풀렸다 그땐 그랬다.
날로 염색 실력은 늘어가고 방바닥에 묻은 염색의 흔적이 점점 늘어날 때 쯤 나는 아버지의 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집에서 나왔다. 그와 동시에 불장난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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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열아홉 살의 나에게 미쳤다고 말했다.
열세 살의 나는 엄마에게 천재 소리를 들었다. 6년 사이에 나는 천재에서 미친년이 되었다. 미친년이 된 까닭은 간단했다. 대뜸 극작과에 가고 싶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고작 대뜸 결정한 것이 아니었으나 엄마의 기준에선 대뜸이었다. 엄마는 내가 일반대학에 진학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갖길 원했다. 은행원이나 선생님이나 공무원 같은 직업들이 엄마의 기준에선 ‘안 미친년’이었다. 초등학생 때 학교 대표로 나가 상을 타왔을 땐 분명 작가가 되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이상했다. 그래서 우린 더 많이 싸웠다. 어느 날엔 지금까지 써온 작품 분석 노트와 습작 노트를 거실 한복판에 던졌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 알고 그만두라고 하는 거야!?’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날 이후 엄마는 내가 서울로 대학을 진학할 수 있도록 저축을 했다. 자취방 월세도 필요했고, 가끔 지방에 내려올 때 필요한 교통비도 필요했고, 동생과 나눠 입던 옷들도 못 입게 되니 옷도 그만큼 사야했다. 그 외의 모든 것이 지금의 두 배 이상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내가 어느 정도로 글을 쓰는 건지 잘 몰랐음에도 차근차근 준비하셨던 것 같다. 나는 단 한 번도 엄마에게 글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이건 투자자에게 작품을 보여주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투자 좀 해달라고 땡깡 쓴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투자를 받았다. 이상했다.
남의 집 딸들은 유난 떨지 않고 안정적인 길로 가는 것 같은데 나는 어디서부터 왜 꼬인 건지 그런 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불확실한 길은 무서울 법도 한데 무식한 게 당당하고 용감하다고, 무섭지도 않았다. 어디서 솟는 것인지 모를 용기 덕분에 상상 속 미래의 나는 언제나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였다. 그래서 더더욱 엄마의 눈에 작가라는 직업은 위험천만한 직업이었다. 고정적 수입은 불확실하고, 미친 듯이 잘 써야 성공하는. 엄마에게 나의 꿈과 미래는 불장난 같은 거였다. 아마 엄마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직업을 불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불장난은 스릴 넘치고 재밌는 법이다. 그래서 불장난이 좋다.
번외
불 주사 자국이 아직 팔에 남아있다
장 시간이 흘렀음에도 어떠한 자국은 평생 남는 다는 걸 또 알게 된다
난 그날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분명히 있었던 일 이라는 것 또한
불 쌍한 친구가 한 명 있다.
장 난을 자주 치는데 드럽게 재미가 없다
난 재밌는 사람이라 참 다행이다.
불 가능하다구요?
장 난하십니까?
난 가능하다봅니다
불 고기 버거를 태어나 처음 먹은 것이 열한 살 때 인가요?
장 소는 롯데리아 그 당시 생일파티는 늘 그곳이 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일파티는 꼭 돈까스 집인 < 코코인 >에서 해왔기에 매우 설레었는데 뒤늦게 장난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장
난 감은 또 어린이셋뚜를 먹어야 한다는 것을 뒤 늦게 분통해 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불 가능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장 마가 그치기만을 하염없이 기도했어.
난 용기가 없었으니까.
: 좋아해,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