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연뮤를 보글보글

< FUN HOME >
석예원

02

편의점 잔혹사

겉촉속바 에디터의 맛대맛
송유선

03

음악감상문

여기가 노래 추천 맛집
문혜경

04

맛있는 음식에
추억을 곁들여

새내기의 예대 맛집 탐방기
신동현

05

당신의 집콕생활,
충분히 아름다우리

취미생활 만렙의 노하우 대방출
이다울

06

집밥 황선생

< 고맙토달걀볶음 > 레시피
황선주

07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

눈물의 흑역사 청산기
극작전공

08

에세이 

고백에 대한 우리들의 고백
극작전공

01

아빠는 엄마랑 결혼했을까

뮤지컬 < FUN HOME >

석예원 


“CAPTION. 설명. 아빠와 나 둘 다 펜실베니아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그리고 아빤 게이다. 그리고 나도 게이다. 그리고 아빤 자살을 했다. 그리고 난... 레즈비언 만화가가 되었다.”
_< FUN HOME > 중


 뮤지컬 < FUN HOME >은 만화가가 된 43세 앨리슨이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기로 다짐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주인공인 앨리슨 백델의 아버지인 브루스 백델은 능력 좋은 영어 교사이자,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가업인 장례식장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목의 유래가 등장합니다. 늘 아버지의 일을 어깨너머 지켜보던 아이들이 장례식장, Funeral Home을 줄여서 Fun Home이라고 부르기 시작하게 되면서부터죠. 슬픔과 좌절을 상징하는 Funeral Home이 Fun Home으로 불린다는 것 자체에서부터 이 극의 아이러니함이 드러납니다.

 19살에 우연히 접하게 된 책으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성립하고, 부모님께 바로 커밍아웃을 한 앨리슨과 달리, 브루스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자 합니다. 브루스는 지극히 평범하고 남들이 보기에 화목한, 아주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기 위해 지독할 만큼 노력합니다. 그 이유가 극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캐릭터가 지닌 성격에서부터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브루스가 원했던 것처럼, 그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단란한 가족의 형태를 띠었지만, 집 안으로는 늘 금이 가 있었습니다. 완벽주의적이고 강박적인 브루스의 성격 때문이었죠. 극 중 브루스는 과할 만큼 집 꾸미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마 자신을 유일하게 숨길 수 있는 공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델가의 집 내부의 모습을 구현한 무대는 화려합니다. 패턴이 짙은 벽지와 수많은 액자들. 잘 배열된 책들. 브루스가 자신을 ‘쓸 만 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엿 볼 수 있는 무대였습니다.
 그런 성격을 지닌 만큼, 브루스는 커밍아웃이 두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브루스는 균열을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요.


  앨리슨은 브루스가 자신의 커밍아웃 이후 4개월 뒤 트럭에 치어 세상을 떠난 것을 보아, 그게 단순 사고가 아닌 자살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렇다면 브루스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요?
 저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삶의 균형을 맞닥뜨려서. 두 번째로는 자신의 오류를 깨닫게 되어서. 사실 브루스는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완벽한 모습을 추구했기 때문에 폭력적일 만큼 자신의 틀을 고집했고 그 틀 안에 가족들이 맞춰지기를 바랐죠. 바지와 헐거운 티셔츠, 스포츠머리를 원했던 앨리슨에게 분홍색 드레스와 메리제인 구두를 강요하기도 합니다. 늘 여성스러운 모습을 권고하면서 남에게 놀림 받지 않고 평범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이 옳은 거라고 믿어왔던 그의 사상이 가족들을 수없이 옥죄곤 했습니다. 그 속에서도 자기자신을 깨닫게 된 앨리슨을 보면서 브루스의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것 같습니다. 이 죄책감이 브루스를 밤낮없이 시달리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브루스는 자살을 했을까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정말 많은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라 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매력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뮤지컬 < Fun Home >을 얘기하면서 연출적인 부분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앨리슨의 현재와 과거는 수도 없이 교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 위에선 9세, 19세, 43세인 총 세 명의 앨리슨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죠.
 무대 위가 43세 앨리슨의 기억 속이 되는 셈입니다. 이 방식은 많은 효과를 일으킵니다. 43세 앨리슨과 함께 그의 과거를 엿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자신의 과거를 지켜보고 있는 앨리슨이 소신적의 철없는 행동에 부끄러워하고 브루스의 고백에 심란해하기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보다 강렬한 감정의 교류가 일기도 합니다.
 인상적인 장면은 ‘Telephone Wire’ 이라는 넘버였습니다. 이 넘버에서는 43세 앨리슨이 브루스와 함께 드라이빙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극적 허용입니다. 실제로 브루스와 드라이빙을 하는 건 19세 앨리슨이지만, 나이가 들고 비로소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43세 앨리슨이 19세 앨리슨에 빙의해 과거에 완전히 잠식되고 있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드라이빙 중 브루스와 앨리슨이 대화를 나눌 때는 그들의 대화 내용보다는 감정선을 따라가게 되는데, 심장을 쿵쿵 두드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누구도 진솔한 말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요.


 개인적으로 뮤지컬 < Fun Home >은 스토리보다는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토리가 뒤떨어지는 작품도 아닙니다. 어디서 또 이런 뮤지컬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텍스트는 경쟁력 있고 색깔이 뚜렷합니다. 연출이 이들의 삶 자체를 조명하는 데 이용되었다면, 텍스트는 가족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끔 합니다. 화목한 가족의 기준, 강박적으로 프레임이 씌워진 부모라는 역할. 가족의 체제, 희생되는 아이들. 이 수많은 주제가 두 시간 동안 무대 위에 상주합니다. 인물들이 행동이나 말로써 그 주제를 밟았을 때 텍스트는 힘을 발휘합니다. < FUN HOME >이 지닌 텍스트의 힘은 생각보다 묵직했는데, 그 무게를 견디는 것이 조금은 버겁기도 했습니다. 그 텍스트의 무게를 인지하는 순간에는 울컥하고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습니다.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요.
 저는 글자에서부터 출발하는 예술은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 Fun Home >은 공연을 볼 때보다 보고 난 후에 생각할 거리가 더 많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여운이 더 깊게 남은 공연이었습니다.


 뮤지컬 < Fun Home >은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나, 코로나의 여파로 조기폐막을 해 8월 30일까지만 공연합니다. (리뷰가 올라갔을 때에는 이미 막을 내렸겠네요…) 아쉽지만, 다음에 재연이 올라오게 될 때 꼭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들의 희비를 이미 맞닥뜨리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사진출처 / 한국정경신문, 서울문화투데이


02

편의점 잔혹사

'과자'편

송유선 


강제적 집콕의 시대. 평소 군것질을 잘하지 않는 나인데 상황이 만들어낸 새로운 습관인건지 넷플릭스를 볼 때 자꾸만 입이 심심해져 주전부리 혹은 야식을 찾게 되었다.
가장 근거리에서 소비할 수 있는 편의점을 제집 드나들 듯 들락거리다 보니 다소 괴랄하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가난한 대학생. 1500원을 허투루 쓰고 싶진 않아 흐린 눈으로 지나치기 일수. 그러나 이번 기회를 빌미로 대신 먹어줘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과자매출이 2배가량 껑충 뛰었다고 한다. 그만큼 집에 있다 보면 심심하고, 심심하다 보면 입이 심심하고 뭐 그런 가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에게 과자 신메뉴를 대신 먹고 소개해주려 한다. 매번 먹던 것만 먹는 당신에게 새로운 맛을 찾아주고 싶다. 그 대신 내 혀가 좀 고생할지도 모르겠지만.


* 필자는 과자 중에서 꿀꽈배기와 조청유과를 좋아한다.아주 가끔 썬칩 3조각 집어먹는 정도의 변수는 있다. 지극히 주관적이므로 참고만 하길 바란다.


1. 꼬깔콘 멘보샤맛(롯데 72g) - 1500원 (gs25 2+1 / 롯데 과자에서 교차가능)

첫 시작은 꼬깔콘. 생각없이 주워먹기 좋은 과자 중 하나인데 멘보샤맛이라니 신기해서 참을 수 없었다. 첫 향은 나나콘 향. 기존의 꼬깔콘은 겉면이 더 얇고 바삭! 한 맛인데
이 멘보샤맛은 나나콘 과 꼬깔콘 중간의 단단함을 가졌다. 약간의 설탕 코팅때문인가? 목 끝에서 달달함이 치고 나온다. 식감이 좋은 편은 아닌 듯.

그리고 멘보샤를 먹어보진 않았지만 약간 새우버거에서 나는 그 오묘한 향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그 맛이 오죽 애매하면 10개정도 집어먹고 나서야 알았을까.
이쯤 되면 뇌가 속이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낵에서도 먹힐까? 라는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애매한 맛이다.
나나콘이 더 저렴한데 집 앞에 학교 문방구점이 있다면 나나콘을 먹길 추천한다.


2. 포테토칩 에그토스트맛(농심 53g)–1500원 (gs25 2+1/포테토칩 교차가능)

향이 정말 신기했다. 유통기한 얼마 남지 않은 식빵을 달걀물에 넣고 부친 그런 향? 프렌치 토스트같은 달달한 계란향에 코를 훅 치고 들어온다. 첫인상부터 호감도 상승.
맛이 소름끼친다. 계란후라이 부쳤을 때 그 바삭바삭한 계란 테두리를 먹는 느낌이 난다. 약간 약오른다. 이삭토스트에서 계란 토스트 시켰는데
계란과 식빵테두리만 준 것 같다. (칭찬) 감자도 약간 그을린 노릇노릇한 느낌이다. 톤은 주황빛. 감자인데 어떻게 계란 맛과 향을 이렇게 잘 구현했을까.
현대 기술의 발전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만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에그토스트 할 때 약간의 단맛을 기대했는데 맛이 강렬하지 않고 슴슴하다.


3. 포카칩 2MIX (오리온 66g) – 1500원

봉지를 열자마자 김치면에 있는 후레이크 냄새가 강렬하다. 그런데 그 냄새보다 약간 더 중국산 김치가 많이 들어간 듯한 오묘한 냄새. 김치 포카칩의 맛은 짭짤하고
막상 먹어보니 딱 김치 사발면 정도의 김치를 먹는 것 같다. 뭔가 씹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게 김치인지는 잘 모르겠고 하지만 코를 흥, 했을 때 김치 냄새는 나는 그 정도.
포카칩에 김칫국물이 전체적으로 고르지 않고 얼룩덜룩하게 묻어있다. 나는 확실하게 빨간 게 좋은데 아쉽다. 김치와 계란이 뒤죽박죽 섞여 있어서 따로 먹고 싶어도
골라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계란칩맛은 포테토칩이랑 맛이 거의 흡사한 대신 색이 좀 더 연하고 맛도 좀 더 은은하다. 이 역시 맛들이 죄다 슴슴하다.


4. 포테토칩 육개장 맛(농심 60g)–1500원 (gs25 2+1 할인/포테토칩 교차가능)

이건 나온지 좀 된 시리즈로 알고 있는데 항상 편의점에서 흐린눈으로 지나가서 아직도 살아 있는지 몰랐다. 무튼, 처음 봉지를 뜯었을 때 의아했다.
왜 육개장인데 벌집피자 냄새가 나지? 육개장이라면서. 배신감이 치민다. 먹고 나서 두 배의 배신감이 들었다. 이건 사기다. 기만이다. 우롱이다. 육개장에 발끝도 따라가지 않았다.
그냥 포테토칩에 그럴듯하게 표지와 비슷하게 스프 좀 뿌려놓은 외관. 먹었을 때 그냥 일반 포테토칩과 다른 게 뭔지 잘 모르겠다. 빨리 단종시켜도 될 것 같다.

다 먹고 난 후 혀가 마비되는 줄 알았다. 나름 객관성을 유지하겠다고 하나 먹고 물로 입을 헹궜는데 조미료가 혀에 착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총평을 하자면 감자는 죄가 없는데 감자로 요상한 걸 만든 사람들의 잘못인 것 같다. 몇몇 가지는 나쁘지 않고
신기도 했지만, 가격에 비해 주는 기대와 만족감이 상당히 낮았다. 특히 육개장 포테토칩. 원래 질소 과자인 감자칩임을
감안하고서라도 먹었던 오리지널에 비해 이런 특수상품들이 내 마음을 흔들지는 못했다.
그렇게 나는 쓸쓸하게 넷플릭스를 보며 6020원(봉투값 20원) 과자들을 등지고 다시 대형 뻥튀기로 손을 옮겼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싶습니다. 딱 두 입씩만.

 


03

음악감상

첫 번째 Playlist < 고백 >

문혜경 


노래에는 듣는 이의 기억들이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어요. 같은 곡을 듣고도 소중했던 것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귀부터 틀어막아버리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저는 노래를 마치 기억이 영사되는 스크린처럼 느끼곤 합니다. 눈앞에 소환된 ‘그 때’를 감상하게 될 때면
도대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노래, 아니 이야기들이 부유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지곤 했어요. 이 코너는 그런 호기심에서 시작됐습니다.
앞으로 네 번의 계절 동안 제가 공유하게 될 노래 역시 어쩌면 개인적인 감상문에 불과하겠지만,
그것들이 언젠가는 여러분만의 ‘그 때’로 가는 문을 열게 되기를 바랍니다.

#GO BACK


노래방 간주점프하듯 시간을 뛰어넘고 싶은 그대에게
DAY6, 돌아갈래요

어릴수록 빛이 난다는 꼰대적 멘트는 하고 싶지 않지만,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볼 때마다 마음 속 어디선가 피어오르는 부러움은 해명할 길이 없다. 확실히 나는 갓 스무살이 됐던 때에 비해 좀 멋이 없어졌다. 설날에 떡국 먹으며 겁과 무기력을 반찬으로 집어 먹은 탓이다. 유노윤호와 견줄 만하던 열정은 식었고 이제는 뭐든 두 번 이상 사양하고 거절하고 회피한다. 4년의 재수 생활도 거뜬히 견디던 나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가진 것 개뿔 없어도 무서울 게 없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작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대에게
펜타곤, SUMMER!

 여름이 되면 친구들과 산으로 바다로 훌쩍 떠나곤 했는데 이 글을 적는 지금, summer!의 가사를 보니 새삼 불가능한 것들이 너무 많아 놀랍다. 다들 모여봐! 하는 것도 모자라 아이스크림 먹다 선크림까지 발라주는 건 질본의 경악을 살 만한 일 아니던가. 인류는 코로나 이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모 박사님의 말을 떠올리면 이 노래의 비트는 갑절로 숙연하게 들린다. 정말로 ‘평범한’ 여름이 이렇게 음악 속에만 존재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있으니 문득 ‘여름이 없어지면 이 노래를 들려주며 여름은 이런 것이었다고 말해줘도 될 정도…’ 라고 말하던 음악 사이트의 댓글이 생각난다. 그 사람은 바이러스가 계절을 통째로 삼켜버릴 거라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던 걸까?

#고백(告白)


말 못 할 비밀을 품고 있는 그대에게
2PM, I Can't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유행 중 한 가지가 바로 ‘숨•듣•명’이다. 이것은 숨어 듣는 명곡의 줄임말로 남들에게 당당히 내어놓기는 어딘가 쑥스러운 음악 취향을 일컫는다. 물론… 내게도 있다. 중학생 때 나는 2PM의 열렬한 팬이었다. 심지어 안목이 몹시 유니크했고 당시의 최애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주변 사람들의 조롱거리다. 덕분에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선수보다도 자괴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그러나 덕질의 역사를 고백하는 이 숭고한 자리에서만큼은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겠나. '썩어 문드러진 낫띵 베러', '염소꽃' 등 온갖 불명예를 입은 구오빠들의 명곡을 영업해보리라. 09년도 특유의 오토튠 범벅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이 노래만큼은 굳이 숨어 듣지 않아도 될 정도니까. 여러분도 짐승돌의 러브송을 찐하게 즐겨보길 바란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것만 같은 그대에게
권진아, 운이 좋았지

 2년 간의 짝사랑을 끝냈다. 아무것도 이루어진 적 없는 자리라 치울 것도 별로 없더라. 여기저기 널브러진 감정을 하나하나 줍다가 갑자기 억울했다. 잠깐동안 그 친구의 장수를 기원하며 욕을 퍼부어줄까 하다가, 그냥 이 노래를 아주 크게 틀었다. 따라서 흥얼거리다 보니 야속함은 사라지고 머쓱함만 찾아왔다. 내가 이유없는 다정함은 무기징역이라고 징징댈 동안 권진아 씨는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니까하는 근사한 가사를 쓰고 있었던 거다. ‘넘어지면 뭐라도 주워라’라는 격언을 음악으로 만들면 이 곡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용기가 생기면 그 친구에게 고백하고 싶은 내용으로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이 노래는 반드시 라이브 영상으로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온갖 구질구질했던 사랑이 일순간 다 괜찮아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자꾸만 생각나는 그대에게
죠지, aura 

돌아보면 말이라도 건네보고 싶은 사람이 꽤 있었는데 은근히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참은 적이 많다. 재밌는 사실은 내 시선을 잡아 끄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독특한 aura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관찰할 때면 평소 인간관계에 지침해 온 메뉴얼이 좀 꼬이는 기분이다. 어떤 걸 좋아할까? 어떻게 하면 웃을까? 별의별 생각이 길어지다 보니 타이밍을 놓친 경우도 허다하다. 이 곡은 원래 러브송이지만, 나는 들을 때마다 나와 엇갈렸던 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다소 낯간지러운 가사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enfp'의 특징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멜로디로 보나 가사로 보나 자신만의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고백하기에 최적인 노래니까! 여러분은 이 곡을 듣고 누구를 떠올릴까 궁금하다.

자주 외롭고 불안한 그대에게
정크야드, 만나서 반가워 

가까운 사이일수록 신선함을 유지하는 힘은 약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슬펐다. 이 곡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띄우고 싶은 고백이다. 더이상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게 되는 일을 피하려면 거리를 두자. 서로에게 그저 은은하고 미미하게 스며들자. 성급한 사랑을 가장 질 좋은 것으로 착각하지 말자. 그런 식의 고백 말이다. 실제로 이 노래를 알게 된 후로는 누군가에게 시든 꽃으로 남느니 적당한 거리에서 신선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답지 않게 관계에 욕심이 날 때마다 좋은 각성제가 되어주는 고마운 노래를 여기에 옮겨 적는다. 혹시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더이상 외롭거나 불안하지 않기를! 그 ‘거리’가 여러분을 지켜주는 때가 분명히 오니까.



고백을 꿈꾸는 사람, 고백이 어려운 사람, 고백을 앞둔 사람
모두에게 괜찮은 위로가 되었길 바랍니다. 

그 럼    우 리 는    가 을 에    만 나 요 !


04

맛있는 음식에 추억을 곁들여

'랩지떡' 탐방기

신동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하여 저의 업소는 무기한 휴업합니다.”
장마가 끝나고 30도를 웃도는 폭염의 어느 날,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하여 자주 가던 음식점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일상 속, 너무도 흔히 볼 수 있는 문구가 되어버린 말. 그래서 요번 『맛있는 음식에 추억을 곁들여』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변해가는 세상 속, 맛 집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고, 어서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마음 편히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길 바랍니다. 모두가 힘쓰는 만큼 코로나19 예방수칙을 잘 지킵시다.


여러분은 ‘고백’ 이라는 단어하면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되돌리고 싶은 과거?, 첫사랑에 대한 기억?, 그 시절의 추억?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 하는 것? 고백이라는 단어 하나에 참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죠. 그래서 요번 『맛있는 음식에 추억을 곁들여』에서는 많은 의미만큼이나 많은 재료를 추가 할 수 있는 떡볶이 맛 집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 맛집에 대한 견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들깨칼국수 (랩지떡)

경기 안산시 단원구 예술대학로5길 3
영업시간: 11:00 ~20:00
19시까지만 입장가능
매주 토요일 휴무
들깨칼국수
      7,000원
즉석떡볶이
2인분   12,000원
 
3인분   18,000원
 
4인분   24,000원
들깨떡볶이
2인분   14,000원
 
3인분   21,000원 
 
4인분   28,000원
떡볶이 사리
      1,500원 (떡 / 오뎅 / 쫄면 / 라면)
 
         500원 (메추리알 3개)
 
      2,000원 (치즈사리)
 
      2,000원 (볶음밥)
 
      2,000원 (치즈볶음밥)
 
      1,000원 (공기밥)
음료수
      1,000원

Tip.
1. 떡볶이에는 야채 + 떡 + 오뎅 + 쫄면 + 메추리알이 들어있습니다.
2. 매운맛을 원하시면 주문시 요청바랍니다.
3. 볶음밥을 드시려면 반드시 국물을 남겨야만 합니다.
4. 물, 단무지, 국자는 셀프입니다.

 여러분 혹시 랩지떡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일명, 랩 지하 떡볶이의 줄임말이죠. 네, 맞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릴 떡볶이 맛 집은 < 들깨 칼국수 >입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랩지떡의 본명은 '들깨칼국수' 입니다. 대부분 랩지떡으로만 알고 계시지 정확한 이름을 알고 계신 분들은 없더라고요.

 저는 갈 때마다 항상 메뉴가 정해져있어요. 인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즉석떡볶이 2인분에 쫄면사리와 치즈사리를 추가해서 먹어요. 맛은 지금 유행하는 매우면서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 먹었던 문방구 옆 분식집에서 먹었던 맛이 떠올라요. (*천안중학교 앞에 위치한 중앙 분식 기준) 국물이 생각보다 많은 편이기도 한데, 국물이 조금 많다 싶으신 분들은 졸여서 드시는 걸 추천해 드릴게요. 저는 졸여서 먹는 편이라, 쫄면에 국물 맛이 밸 정도로 끓여서 먹거든요. 아 근데, 절대 국물을 모두 드시면 안 돼요. 왜냐하면 정말 맛있는 볶음밥이 남아있거든요. 정말 저는 볶음밥을 먹기 위해서 가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맛이 끝내줍니다. 정말 볶음밥 드시면 후회 안하실 겁니다.

 랩지떡을 처음 들어섰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그때가 아마 작년 이맘 때 쯤 이었어요. 저는 서울예대 학생도 아니었고 그저, 알바를 하면서 글 쓰는 수험생 신분이었죠. 그런데 그곳을 왜 갔냐고요? 수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알고 있는 선배님께 조언이나 얻을까 싶어서 예대를 찾아갔었죠. 선배님이 떡볶이 맛 집이라고 데리고 와주셨죠. 처음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굉장히 홀리했어요. 약간 옛날 할머니네 감성이 있으면서도 음악은 찬송가가 흘러나왔으니까요. 가게 내부 인테리어도 기억에 남는 게 핑크와 화이트의 벽면과 정반대로 빈티지스러운 테이블과 의자, 시계 그리고 차림표. 응팔에서 나올 법한, 시간이 흐르지 않은 곳 같아 보였어요. 그때도 똑같은 메뉴를 시켜서 먹었어요. 즉석떡볶이 2인분에 쫄면사리와 치즈사리를 추가… 여러분에게도 추천합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만약, 맛이 없으시다면‥ 제가‥ 닥터페퍼 한 개 선착순 한분께 사드리겠습니다. 정말 진짜 맛있습니다.

 여기서 TMI로 저의 추억소스를 더한다면, 제가 처음 랩지떡에 왔을 때 수시 시험을 앞두고 많은 걱정이 있었어요.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맞는 가? 차라리 다른 애들처럼 조금은 편한 길을 선택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이런 잡다한 생각과 푸념들을 말했는데 선배는 간단명료하게 “신경 끄고 네 할 일이나 하세요.” 한마디 해주셨어요. 정말 더도 말고 딱 그 한마디였는데 모든 잡생각이 사라졌다고 해야 하나? 내가 걱정으로 가득채운 머릿속을 해야 할 일들로 채우다보니 이렇게 극작과에 입학하게 되었죠. 저는 겁쟁이라 입시시험이 너무 무서웠거든요… 여러분들은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지금의 저와 고백(Go Back)한 과거의 저는 다시 랩지떡에 앉아 떡볶이를 먹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저와 비슷한 추억이 있나요? 만약 없으시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장소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게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돼주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추억이 있으신 분들은 지금 한 번 안부 인사나, 고마움에 대해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 지금을 기억하세요. 기억한다면 당신에겐 언제나 추억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가 종식되어 맛 집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그런 날을 기약하며 지금까지 『맛있는 음식에 추억을 곁들여』이었습니다.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05

당신의 집콕, 충분히 아름다우

레진아트 / 인테리어 / 게임 추천

이다울


여러분의 집콕 생활
안녕하신가요?

 외출을 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몸이 배배 꼬이는 분도, 늘 해왔던 집콕 생활이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집순, 집돌이분도 계실 텐데요. 저는 후자에 속하는 파워 집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 집콕과 강제적 집콕은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어쩐지 몸이 근질근질하고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처럼 마음 한 쪽이 답답하기도 합니다. 제가 지루하고 외로운 집콕 생활에 한 줄기 단비 같은 취미 발견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저의 추천이 여러분의 집콕 생활을 조금이나마 풍족하게 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당신의 집콕 생활, 충분히 아름다우리!

당신의 집콕, 충분히 아름다우리

레진아트

 레진아트는 ‘공예용 레진’을 이용하여 만드는 공예를 말합니다. 주로 치과에서 사용하는 레진 또한 같은 레진이지만, 레진아트에 사용하는 ‘공예용 레진’과는 조금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공예용 레진은 경화 이전에 끈적한 액체 형태를 띄고 있어요. 그러나 종류에 따른 경화 방법, 경화시간을 거치고 나면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고체 형태가 됩니다.

 가장 먼저 필요한 준비물은 레진. 주로 사용하는 레진은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먼저, ‘2액형 레진’
- 말 그대로 2액형, 두 가지를 섞어서 사용하는 레진입니다. 대부분은 ‘주제’와 ‘경화제’로 구성되어있어요. 제조사에 따라 두 가지를 섞는 비율은 다양합니다. 무게비율인지, 부피비율인지 먼저 확인 후 1:1 혹은 10:3 이런 식의 수치 또한 확인해주세요! (무게비율 2액형 레진이라면 미세저울이 필요합니다.) 2액형 레진은 약 6시간에서 24시간까지의 경화시간이 필요합니다. 경화 방법은 따로 없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어요. 대신 뒤에 소개될 UV레진보다 완성 시 퀄리티가 좀 더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음은, ‘UV 레진’
- 따로 섞을 필요 없이 UV 램프가 있으면 자연 경화시간 없이 빠르게 완성 시킬 수 있습니다. 구매하려는 레진이 UV 전용인지 UV/LED 겸용인지 확인하세요! UV/LED 레진이라면 램프 또한 UV/LED 겸용 램프를 추천합니다. 다른 램프 사용이 불가한 건 아니지만, 더 오래 걸리거나 미경화(완전히 굳지 않는 현상)가 남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3분~10분으로 2액형에 비해 월등히 짧지만, 램프를 통한 경화는 레진을 수축하게 만들고 작품의 퀄리티가 조금 떨어질 수 있습니다.

 사진 속 작품은 레진아트 중에서도 ‘하트쉐이커’ 라고 불리는 종류입니다. 말 그대로 하트 모양의 쉐이커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레진을 이용해 하트모양 틀을 뽑아내고 앞뒤로 필름지를 오려 붙입니다. 그 안에는 어울리는 비즈와 파츠를 넣어주면 됩니다. 쉐이커라는 이름답게 흔들면 ‘샤카샤카’ 하는 소리가 나는 매력이 있어요. 이 안에 오일이나 글리세린을 채워 넣으면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워터쉐이커’가 됩니다. 하트쉐이커에 빠져 주구장창 같은 것만 만들어내는 제게 엄마가 슬쩍 다가와 ‘난 분홍이 좋아.. 그리고 MOM… 이라고 써줘…’ 하고 가시길래 취향에 맞게 주문제작 해드렸답니다.

 레진아트에 첫발을 내디딘 분이라면 국내 쇼핑몰 몇 군데를 추천해 드려요! ‘슈가데코’, ‘미니어몰’, ‘쪼만한마을’ 등 레진아트 재료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쇼핑몰입니다. 쉐이커 안을 장식하는 파츠나 비즈는 각종 쇼핑몰이나 동대문 종합상가를 이용하셔도 좋아요! 레진아트를 이미 할 줄 안다, 시작한 지 좀 됐다, 하시는 분은 타오바오와 알리 익스프레스 직구를 추천해 드립니다. 진입장벽은 있지만, 국내 쇼핑몰과 비교하면 가격이 월등히 저렴해서 한 번 이용하면 끊을 수가 없답니다.


 여러 단계를 거쳐 꽤 오랜 시간이 들긴 하지만 자리에 앉아 손으로 꼼지락대기를 좋아하는 당신! 어릴 때 종이접기 좀 접어봤다, 아이클레이 좀 만져봤다, 하는 당신! 잡생각 없이 목 빠지도록 집중할 만한 취미를 찾고 있는 당신! 레진아트를 새 취미로 추천합니다.

 

여기서 꿀팁!
보통 틀을 제작하는 등의 부피가 있는 작업은 2액형 레진을, 파츠를 고정하는 등의 미세한 작업은 UV레진을 추천합니다.
이 외에도 레진을 부어 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실리콘 몰드, 레진에 섞어 사용하는 조색제, 마찬가지로 레진에 섞어 쓸 수 있는 글리터와 펄,

다양한 파츠와 비즈 혹은 펜던트 등을 취향에 맞게 구매하시면 됩니다!

당신의 집콕, 충분히 아름다우리

방 인테리어

 저도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방 전체를 완벽하게 꾸미진 못 했지만 군데군데 마음에 드는 스팟을 정해서 꾸미기 시작하면 차근차근 시작하기 좋아요.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중구난방으로 구매부터 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컨셉을 정하고 시작하는 게 훨씬 수월합니다. 저는 이사 후 제 방 곳곳마다 작은 컨셉을 정해두었어요. 우선, 방 전체는 화이트&우드로 정했고 대신 침구와 커튼을 머스타드 단색과 체크로 맞춰 따뜻한 느낌을 줬습니다. 제 방 안에서 마음에 드는 스팟 두 군데를 소개해드릴게요.

 방 안에서 제가 애정하는 첫 번째 공간입니다. 책상 옆에 배치한 원목 2단 선반 안에 필요한 것들을 수납하고 가장 윗부분을 취향껏 꾸며두었습니다. 외출 전 악세사리를 챙기기도 하고, 취침 전 향초를 켜두기도 합니다.

 사진 속 선인장은 이케아 옆 롯데몰 행사부스에서 데려온 친구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마치 발가락양말처럼 동글동글 너무 귀엽게 생겨서 손에 고이 쥐고 버스를 2시간 타서 데려왔어요. 분도 갈아주고 하니 어느새 쑥쑥 자라 삐죽한 애들이 올라왔어요. (저런 식으로 자랄 줄은 몰랐지만요…)

 테이블야자가 키우기 쉽고, 초록빛이 강해 전체적인 색조합에서 중심역할을 해주어요. 실내를 꾸밀 때는 쉽게 죽지 않으면서도 쨍한 초록빛의 식물을 추천합니다.

 이케아에서 마지막 할인 찬스 때 데려온 미니양초 랜턴. 금속부분 손잡이는 별다른 기능 없이 장식용이지만 본인의 본분에 충실하게 예쁩니다. 주의점은 양초를 태우고 나면 유리가 꽤 뜨거워요! 저는 그냥 견디고 유리를 열어서 불을 끕니다.


 이곳 또한 최대한 화이트와 우드 느낌으로 통일하려고 했습니다. 천은 답답해 보이지 않게 두께가 아주 얇은 거로 골라 안이 살짝 비치도록 했고, 식물의 화분도 대나무 재질로 골라 원목 선반과 통일감을 주었습니다. 이 외에 색을 완벽히 통일시킬 수 없는 소품들은 포인트 컬러와 쉽게 어우러지는 무채색을 선택하면 조합하기가 쉬워요.

당신의 집콕, 충분히 아름다우리

방 인테리어

 제가 애정하는 또 다른 공간은 책상과 옷장 사이의 한 귀퉁이입니다. 딱 암체어 하나가 들어갈 공간이에요. 책을 읽을 때 책상의자는 허리가 아프고 침대는 목이 아파서 적당히 편안한 자세를 위한 암체어가 정말 갖고 싶었어요. 또 화이트 컬러로만 두긴 지루해서 밝은 우드톤에 맞춰 옅은 인디핑크로 정했어요. 암체어를 그냥 두긴 허전해보여서 촉감이 부드러운 담요를 헐겁게 덮어두고 그 위에 그대로 앉아요. 러그와 비슷한 컬러로 통일한 쿠션은 무릎에 올려놓고 책 보기용으로 높이가 딱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근처에 소지품을 놓을 일이 꼭 생기길래 집에 굴러다니던 원형 스툴을 주어다가 천을 재단해 덮어두었습니다.

 쿠션패드와 커버 사이즈가 다른 이유는 제가 그냥 잘못 샀어요‥ 결국 양쪽을 잘라내고 다시 박음질 해 사이즈를 새로 맞췄습니다. 러그는 발에 닿는 감촉이 아주 부드러워서 좋고, 살짝 베이지빛이 도는 인디핑크라 차분한 분위기와 어울려요.

 방 곳곳을 한 가지 컬러로 전부 통일하기엔 너무 지루하고 또 그게 마냥 예쁜 건 아니더라고요. 제가 자주 앉아있는 구석 자리는 색감을 조금 바꾸어 톤다운 된 핑크로 정했습니다. 대신 다른 색들과 따로 놀지 않게 최대한 채도가 낮은 핑크로 골랐어요. 담요와 같은 천 종류와 쿠션을 같이 배치할 때는 커버의 재질을 비슷하게 해주는 것도 잘 어울리게 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최대한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 아이템들 선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골라 구매했습니다. 특히 원하는 아이템마다 가격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고, 하나하나 조금씩 구매해 채워가는 재미도 있어요! 대청소와 가구 배치만 옮기는 건 이제 질렸다는 당신! 뭐든 새로운 걸 들여보고 싶다는 당신! 방 인테리어 취미를 추천합니다.

제가 요즘 빠져있는 게임 하나를 소개합니다!
‘Fall Guys’


‘폴가이즈’는 한 명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혼란스러운 라운드를 이어가는 정신 없는 60인 멀티플레이 파티 게임입니다. 기괴한 장애물과 싸우고, 무자비한 경쟁자를 쓰러뜨리고,

대단한 물리 엔진을 극복하세요. 품위는 내던지고 승자의 왕관을 위해 우스꽝스러운 실패에 대비하세요!

게임에 접속하면 우선 귀여운 캐릭터가 배정됩니다. 게임 시작 시 서버에 접속하여 60명의 인원이 모이게 됩니다. 각 스테이지는 랜덤으로 지정되고 스테이지마다 탈락자가 우르르 발생합니다. 약 5번의 스테이지를 거쳐 최종 1인을 가려내는 서바이벌 게임! 고약할 정도로 어려운 스테이지도 있지만, 우선 게임 캐릭터가 너무나 귀엽습니다.

이 게임의 또 다른 재미는 게임을 반복할수록 경험치 개념의 포인트가 적립된다는 점인데요. 포인트로는 자신의 캐릭터를 꾸밀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옷이나 코스튬을 입힐 수도 있고, 최후의 1인이 되었을 때 선보이는 퍼포먼스를 구매할 수도 있어요! 게임 자체는 피 터지고 험난하지만,
캐릭터들과 스테이지 디자인이 아주 귀여워서 은근히 힐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느새 게임에서 탈락할 때마다 게임 시작 버튼을 무한클릭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특히 이 게임은 여러 명이 함께 접속하지만, 채팅 기능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서로를 비난할 방법 없어 더욱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어요.

스테이지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FALL GUYS'

 

- 징크스 

 징크스 스테이지는 한 마디로 ‘좀비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우선, 이 스테이지는 팀전으로 두 개의 팀으로 나뉩니다. 자신의 몸 주위에 분홍색 연기가 피어나고 있는 사람이 좀비입니다. 룰은 간단합니다. 최대한 감염되지 않고 버티다가 만약 감염되었다면 상대 팀을 최대한 많이 감염시켜 패배하게 하는 겁니다. 먼저 팀 전원이 감염된 팀이 패배합니다!

- 시소

 말 그대로 무수한 시소가 이어져 있는 스테이지입니다. 시소는 캐릭터가 올라서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이리저리로 기울어지는 시소를 지나 결승점에 먼저 도착하면 승리하는 개인전 게임입니다. 아래로 추락하면 세이브 포인트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보통 1라운드에서 많이 선택되는 게임인데요. 꿀팁이 있다면, 시소 안에서는 되도록 점프하지 마세요! 높이 점프하면 캐릭터가 자빠지는데 다시 일어나는 사이 시소 아래로 추락하고 맙니다. 시소 스테이지는 조금 어려운 난이도에 속합니다.

저는 ‘폴가이즈’를 플스 게임기로 즐기고 있는데, 현재 PS4에서는 PS PLUS 회원에 한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플스 게임기가 없으신 분은 스팀에서 2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방 안에서 휴대폰만 만지고 있기 지루한 당신! 온갖 게임은 다 해봤지만 서로 죽고 죽이며 물어뜯는 거친 게임엔 이제 질려버린 당신!

하지만 긴장감과 흥분을 즐기고픈 당신! ‘Fall Guys’ 게임 취미를 추천합니다.

사실 가장 난감한 질문,
"너 취미가 뭐야?"

 하지만 ‘취미’라는 두 글자는 거창하지 않아도 좋아요. 실제로 한동안 제 대답은 ‘눕기’ ‘밥 먹고 눕기’ ‘눈 떠서 2시간 동안 누워있기’가 전부였어요. 하지만 이러다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집콕 생활에 단단히 싫증이 나겠더라고요. 오늘 제 이야기를 통해서 여러분들도 당당히 답할 수 있는 취미 하나쯤은 생기셨길 바라겠습니다. 그 어떤 것이어도 좋아요. 취미는 누군가에게 심사받는 것이 아니잖아요? 나 스스로가 충분히 즐겼다면 그게 무엇이든 100점짜리 취미였음이 틀림없을 겁니다. 그럼 오늘도 집 안에서 안전하고 평온한 하루 보내셨길 바랍니다. 당신의 집콕 생활, 충분히 아름다우리!


06

집밥 선생

< 고맙토달걀볶음 > 레시피

황선주


질긴 대한민국의 여름에 매일 불쾌지수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요즘, 더위에 못 이겨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적은 없는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로 상처 주기가 쉽다. 사과도 쉽다면 좋겠지만 어려우면 더 어려웠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간지러운 말 대신 직접 만든 음식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 고백해 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감사의 마음, 애정의 마음을 고백해 볼 수도 있겠다. 오늘 소개해 볼 음식은 마음을 담은 포근한 계란과 상큼한 토마토의 만남. ‘고맙토달걀볶음’이다.

재료

달걀 2개
소세지




* 계량은 밥숟가락(밥숟)으로 하겠다

방울토마토 10개
대파
마늘 2개

설탕
간장
굴소스

 

 

 요리 시작 전 재료들을 몽땅 썰어버린 다음에 조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게 편하고, 태워먹을 확률이 확 줄어든다. 계란은 소금 한 꼬집과 함께 잘 풀어 준다. 토마토는 두동강낸다. 소세지는 먹기 좋게, 대파는 세로로 반을 가른 후 작게 썰어 준다. 마늘은 절구로 빻아도 되고, 통마늘을 칼로 잘게 다져도 된다. 글쓴이는 후자를 추천하겠다. 식감이나 풍미가 더 좋고, 다지면서 다시는 말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다. 조성모의 다짐을 들으며 요리해 보자.

 

 

 약불로 둔 팬에 식용유를 충분히 두르고 풀어둔 계란으로 스크램블을 만든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두를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 빨리빨리를 실천하는 순간 이 요리는 대실패다. 인내심을 가지고 약불에서 사진과 같이 완벽한 스크램블을 만들었다면 이 요리는 다 된 거나 마찬가지다.

 

 

 빈 팬에 식용유를 두른다. 기름이 달궈지기 전에 대파와 다진 마늘을 넣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파기름에 대파향과 마늘향이 잘 배어나온다. 한국인 느릿느릿으로 약불에서 볶다 보면 향긋한 파 향이 올라온다. 여기서 중불로 올린 후 소세지와 토마토를 넣고 볶아 준다. 여기서 취향에 따라 청양고추를 넣어도 된다. 토마토가 느긋하게 풀리려 하면 설탕 반밥숟, 진간장 한밥숟, 굴소스 두밥숟, 처음에 만들어 둔 스크램블을 넣고 볶아 준다.

 

 

 예쁜 그릇에 밥을 담는다. 그 위에 토마토달걀볶음을 올려 준다. 기호에 따라 후추, 파슬리 등등을 추가해 먹으면 좋다. 밥에다 올리지 않고 그냥 먹는다면 훌륭한 술안주가 될 수 있겠다.


구○○ / 43, 엄마

맛있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달걀 식감이 좋다. 사과의 의미로 받기엔 조금 조촐해서 빈정 상한다. 맛은 진짜 있다.



★★★★☆
박○○ / 20, 친구

처음 비주얼은 솔직히 조금 먹기 싫게 생겼다. 비닐에다 넣고 으깬 것 같다. 근데 입에 넣는 순간 토마토와 달걀의 미묘한 조합이 아주 맛있다. 자기 전에 또 생각날 것 같다. 당장 구속시켜라.


★★★★★
이○○ / 20, 친구

맛있다. 엄청 맛있는데, 이걸 나한테 사과의 음식으로 주면 널 때리고 싶을 것 같다. 난 토마토를 안 좋아하니까. 근데 토마토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먹어도 이건 진짜 맛있다. 요리해 준 가상함에 별 하나 더 추가.


★★★☆☆



미안하지만 사과할 대상이 토마토를 싫어하는 이라면 토마토달걀볶음은 혼자 해 먹고 다른 음식을 만들어 주길 추천한다.
물론 음식 하나로 마음이 온전히 전달될 거라 기대하지는 말자.
툭 하고 가볍게 던지는 말이 금상첨화로 토마토달걀볶음을 완성시켜 줄 것이다.

만족스러운 한 끼, 성공적인 고백이 되었길 바란다.


07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

눈물의 흑역사 청산기

극작전공


마스터 우그웨이와 복숭아나무

극작 19 쿵푸판다

 흑역사는 인간의 탄생부터 함께하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고 생각한다. 당장 일주일 전에 저지른 말실수부터 시작하여, 잠자리에서 불현 듯 나를 괴롭히는 17살의 기억까지. 기억도 실재하는 것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 좋은 기억은 작게 구겨 불을 붙여버리면 끝이었을 텐데. 잠이 안 오는 새벽,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흑역사까지 물어버렸을 때 나는 영화 쿵푸팬더의 한 장면을 찾는다. 자신의 고민을 먹을 것으로 채우기 위해 복숭아를 따먹던 포에게, 마스터 우그웨이가 인자한 목소리로 건네던 말들.

 자넨 지난 일과 다가올 일을 너무 걱정하고 있어. 이런 말이 있다네. 어제는 역사요, 내일은 미스터리, 하지만 오늘은 선물이라. 그래서 오늘을 Present라고 하는 걸세.


 마스터 우그웨이는 마지막으로 복숭아 하나를 건네고 자리를 떠난다. 포의 손에 쥐어진 복숭아. 지나간 역사와 다가올 미스터리 사이에서 선물과 같은 오늘을 가진 나는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할까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내 옆구리를 찌르던 흑역사는 어느 샌가 자취를 감춘 뒤이다. 나처럼 밤마다 흑역사로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면 마스터 우그웨이의 영상을 찾아보시길 바란다. 정교하게 꼬인 우그웨이의 지팡이가 복숭아를 건네줄 수도 있으니까!


샤이니 동생이 되기 위하여

아이돌연습생지망생

 때는 샤이니가 연하남 컨셉을 밀며 누나를 외쳐 된지 약 1년이 지났을 때다. 나는 당시 샤이니에 대한 열망으로 들끓는 하루를 보내는 생이었는데. 어느 날 SM에서 샤이니의 동생그룹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곧 그것은 내 인생의 무수한 비극들 중 하나가 된다.

 정신을 차리고 봤을 때는, 이미 화장실에서 양파의 ‘그대를 알고’를 열창하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인 나는 이내, 오디션 원정대를 꾸리기 시작한다. 나와 같은 반 친구, 사촌동생 그리고 사촌동생의 친구. 우리는 샤이니의 동생을 꿈꾸며 SM 글로벌 오디션이 열리는 대전으로 향했다. 오디션 대기실로 들어간 나는 그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순식간에 나의 라이벌로 인식했다. 샤이니의 동생이 되고 말 것이라는 그 자신감은 체육대회 에어로빅부분 대상을 받은 것에 기인한 것이었다. 수억 시간 같던 대기 끝에 드디어 내 번호가 불리고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과 함께 오디션 장으로 들어갔다. 마치 온스타일에 나올 것 같은 스타일의 카리스마 짱 여성분을 중심으로 총 네 분 정도가 테이블에 앉아있었고, 그들의 앞으로 노란 선이 길게 그어져있었다. 벽에서 약 30cm 정도 떨어진 선이었는데 오디션 중간에 절대 그 선을 넘지 말라고 일러주셨다. 튀어 보이려고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나도 안 튀어 보인다고. 나는 명심하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열심히도 주억거렸다. 그리고, 혹여 옆 사람들이 자신을 치고 나가더라도 카메라가 여러분을 다 찍고 있으니 표정 관리 잘 하라는 말까지.

 친구가 먼저 노래를 시작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저 친구가 분명 노래방에선 꽤 잘했는데. 이 일은 우리만의 비밀로 해야겠다 다짐했다. 친구의 실패를 마주하며 나는 혹여 몰라 한 곡 더 준비한 메이비의 ‘못난이’를 속으로 되뇌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가 샤이니의 동생임을 보여주려 했다. 이내 노래를 시작함과 동시에 나는 들었다. “다음.”

 고수들은 노래를 한 소절만 듣고도 그 삘링을 안다고 했으니 나는 괜찮았다. 그 다음 이어진 것은 댄스였는데 나는 춤은 영 소질이 없었기에 철저하게 노란 선 안에서 두 다리만 앞뒤로 까닥였다. 그래도 여기서 나를 보여주려면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하는데 선 밖으로는 죽어도 못나갈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양 옆의 사람들이 각기 춤을 추며 노란 선을 침범해 나갔다. 노란 선 밖으로는 나가지 말라했으면서 그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의 춤은 하나도 멋있지 않았지만 그 선을 무시하고 나아갔다는 것이 진짜 멋있었다. 짧은 오디션이 지나가고 나는 그대로 본가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혼자 이불을 꼭 덮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오디션을 보러 간 것이 창피한 게 아니라, 그 선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던 내가 너무도 싫었던 것 같다.

 그날 그 대전 오디션에서 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몇 개월 후에 세상엔 에프엑스가 등장했다. 나는 한 결 맘이 편해졌다. 내가 선을 밟고나가 몸의 관절을 다 뒤틀었다 하더라도 나는 가망이 없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웃으며 하는 이야기가 됐다. 그리고 애지중지하던 샤이니 시디는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른다.


08

에세이

고백에 관하여

극작전공


가장 최근의 다짐

미리

 방학을 하고 본가에 온 나는 여전히 늦게 잠이 들지만, 분주한 아침 소리에 일찍 깼다. 아침마다 엄마는 자기 전에 불려둔 쌀로 밥을 짓고, 차게 마실 보리차를 우렸다. 차가 다 우러나면 병에 붓고 식혔다. 밥이 다 될 때쯤 팔팔 끓는 찌개 위에 뜬 거품을 걷어내고 식탁 가운데에 올렸다. 밑반찬과 함께 가지런히 차려진 아침을 두고, 내내 보았던 엄마의 뒷모습과 번거로운 매일의 반복을 잊고 식사를 했다. 혼자서 자주 밥을 먹던 때, 매 끼니를 인스턴트로 때울 수 없어 억지로 차려 먹었던 것이 떠올랐다. 밥이 더 달게 느껴졌다. 하루 내 쉬지 않는 엄마의 손길이 닿아 제자리에 있는 것들을 보며 집에 왔음을 실감했다. 유난히 길었던 장마로 8월은 산책마저 자유롭지 못했다. 일상에서 좋음을 발견할 가능성이 사소하지만 번거로움을 동반하던 일과 함께 줄어드는 것 같아 조금 서운했다.
 취소되었던 공연이 천천히 시작할 무렵, 극장 안은 조금 더웠고 관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쓴 채, 한 칸씩 띄어 앉아 연극을 관람했다. 무대 위에서 객석을 봤을 때를 상상해 봤다. 사람들 속에서 낯선 기분을 느꼈다. 내가 어쩌다 여기에 이러고 있나 하는. 기꺼이 한번 더를 기약할만한 공연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만하면 될 터인데, 관성처럼 찾아보고 다니는 내가 이상할 지경이었다. 돌아가는 길이 헛헛할 때면 맛있는 걸 먹고, 다음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걸었다.


 오랜만에 방 안에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봤다. 침대 위에서 꼼짝 않고 영화만 보던 때가 생각났다. 여러모로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금을 보내고 있었다. 사랑했던 남녀의 이야기였다. 여자가 남자를 떠날 때, 마지막 순간임을 직감한 남자는 여자를 잡으러 가지만, 여자를 눈앞에 두고도 끝내 잡지 못했다. 둘은 가장 따뜻했던 순간부터 각자의 이기심으로 서로를 떠나는 순간까지 모든 걸 함께 했다. 많은 경우 떠나려는 사람이 관계 안의 강자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내밀어지지 않은 손을 억지로 내밀지 않기로 한 이가 어떻게 약자일 수 있겠는가. 둘은 상처도 공평하게 주고받았다. 영화는 두 시간을 꽉 채워 결국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서로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갖는 두 사람의 사랑을 설득하고자 했으나, 그들의 이별은 나에게 이상적인 이별에 불과했다.

 늦은 점심 약속이 있어 밖을 나왔다. 라디오를 들으며 멍하게 걷다가 디제이의 말이 귀에 꽂혔다. ‘각박한 과정을 거쳐야지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전날 봤던 영화가 생각났다. 긴 시간 동안 차단되어 설 자리를 잃었던 무언가가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서로의 존재가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믿던 주인공들을 시샘하고 있었다. 어쨌든 믿는 것도 결국엔 소질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분리해 두고 지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횡단보도에서 젊은 연인을 봤다. 내 옆에 서 있던 남자는 건너편에 있는 여자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반가움이 느껴졌다. 초록불이 켜지고 남자는 빠른 걸음으로 여자에게 갔다. 여자는 다가오는 남자를 향해 두 팔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가 여자를 안아주고, 올라간 여자의 옷을 내려주었다. 어쩌면 나는 이런 순간들을 위해 계속 무언가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영화를 다시 찾아보고, 조금 더 다정한 마음을 갖기로 다짐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백조를 되찾으러

‌lozy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들의 어떤 선택이 그들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곤 한다. 내게도 그런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나는 주인공에서 엑스트라로 운명이 바뀐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 나는 그러 하겠노라고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었던 7살의 마지막 재롱잔치. 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영어연극 < 미운 오리 새끼 >를 준비했다. 선생님은 오리에서 백조가 되기에 문제가 없는 아이를 선택해야 했는데, 큰 고민 없이 나를 아이들 앞으로 이끌었다. 아이들 앞에 주인공으로 선 나는 부끄러운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그때의 나는 자타공인 사슴반의 에이스였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글을 이미 뗀 상태에서 어린이집을 들어갔고, 취미는 미끄럼틀 위에서 구구단을 외우 는 것이었으니 당연했다(매우 우렁차게). 사슴반을 넘어서 내가 살던 작은 마을에선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한 바로, 주인공은 내 자리가 맞았기에 마음이 꽤나 충만했는데 그 충만함은 며칠 안 가 산산이 깨져 버렸다.

 기세등등하게 영어대본을 읽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물었다. “오리 의상에 노출이 있는데 괜찮겠니?” 나는 노출이란 단어에 깜짝 놀라 울어버렸다. ‘노출’ 7살의 나에겐 꽤나 당혹스럽고 수치스러운 단어였다. 그날 우리가족은 대대적인 회의를 열었다. 노출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결론을 내리고 말씀을 드린 결과. 나는 노출이라곤 찾아 볼 수도 없는 ‘거위엄마’역을 맡게 되었다. 베이지색 싸구려 털로 어찌나 둘러쌌는지 겨울이었는데도 땀이 났다. 한 순간에 주인공에서 엑스트라로 내려갔지만 노출을 감수하느니 이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슬프진 않았다. 나는 내 나름의 위치에서 열심히 팔을 푸덕였다.


 내 푸덕임이 멈춘 건 재롱잔치 직전 날, 주인공의 의상을 확인하고서였다. 그저 나시에 반바지를 입고 맘앤대디를 애달프게 외치고 있는 미운오리새끼. 베이지색 털옷을 입은 거위엄마는 그 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쩌겠나, 도망친 사람은 나인 것을. 노출이란 단어에 겁먹어 달아나느라 도대체 어떻게 생긴 옷이냐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재롱잔치가 시작되고, 나는 거위엄마로서 충실했다. 미운오리새끼를 못생긴 오리라고 놀리는 것.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나도 그랬다. 결국 이 아이가 백조가 된다는 것을. 그렇게 무대 아래로 내려와 미운오리가 백조가 되는 순간을 모두 지켜보며 분에 차 울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에 대한 질투가 아닌, 겁먹고 너무 빠른 포기를 외친 내가 미웠다. 여전히 두터운 털옷을 입은 채였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 기억이 아프고 생생한 건, 난 아직도 그 털옷을 벗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작은 위기만 닥치면 도망이 습관이 되어 엑스트라를 자처한다. 한 때는 그런 거위를 위로하는 글도 써봤다. 거위도 주인공이 될 날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 하지만 내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스스로를 속인 것이기 때문이리라. 도망쳐 거위가 된 이야기는 원인과 결과가 뚜렷한 교훈과 반성의 이야기지 드라마를 이루기에 어렵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난 다시 돌아가서 백조가 되고 싶다. 그 어릴 적의 도망을 지우고 습관이 되어버린 회피를 멀리 미루고 싶다.


고생했어

‌Retsaor-G

네가 이 글을 볼 수 있을 지는 의문이지만 만약 언젠가 네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때라도 알아줬으면 해서 쓰는 글이야.

우리가 처음 봤던 때를 아직 기억해.
우리는 집 가는 방향이 비슷했으니까 같이 갔었지.
항상 같이 가려고 기다렸고
가는 시간 내내 일부러 느리게도 걸어보고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일도 많았는데
지하철 놓치겠다고 뛰었다가 나 혼자 남겨진 거
너는 빠르게 뛰어서 지하철에 탔고 나는 타지 못했고
지금의 우리 모습 같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것도 아니야.
다시 만나자고 하는 말도 아니고,
그냥 우리는 어쩔 수 없었던 거라고 생각하자.


마지막 대화 할 때 우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그냥 그대로 두자.
고생했어.